후기

고생을 사서하는 인간들의 심리는 뭘까?

덜소유구도자 2022. 5. 5. 19:09

안녕하세요. 덜소유구도자입니다.

 

오늘은 고생을 사서하는 피플들은 도대체 대가리에 총을 맞았나 왜저러는걸까??

 

하는 궁금증에 대해 스스로 얻은 답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제가 내향형 인간이니까 내향적인 사람을 기준으로 얘기해보겠습니다.

 

 

논점: 고생을 왜 사서 하는 걸까? 대가리에 총맞음?

 

 

 

1. 내향 인간의 관점

 

보통 내향성 인간은 인싸와는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와따시 수퍼인싸였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외향형 인간의 삶의 피로를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수퍼인싸라는 안 맞는 옷을 입으려면 "원래 이게 나야." 가 아닌 "나는 바뀔 수 있다."

 

라는 마인드로 일상에서 초과노력을 +@로 추가해야합니다.

 

허나 내향성인간의 종특상 집을 제외한 모든 공간은 밖이고, 에너지를 소비하는 곳입니다.

 

외향형 인간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로우에너지인 내향인간은 내적 에너지는 폭발하지만

 

그걸 표출하고 장기적으로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에너지는 많지 않습니다.

 

이에 내향형 인간의 관점에서본 외향형 인간은

 

"야.. 부럽다.. 저쉑 친구도 많고, 사교성도 좋고, 어디서나 자신만만한게 롤모델로 삶고 싶고, 부럽다."

 

또는


"저 쓰1벌럼 개부럽네.. 그냥 처 망해버렸으면 좋겠다. 개꼴뵈기싫네."

 

뭐 이런 의식의 흐름으로 가는데

 

전자의 경우 긍정적인 발현이고, 후자의 경우 부정적인 쇠퇴입니다.

 

허나 둘 중 어느 것을 골라도 명제는 같습니다.

 

내향형 인간은 억지 노력으로 외향형 인간으로 변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내향성 인간도 내재된 외향성의 적극적인 발현이 가능하고, 일시적인 흉내내기, 또는 일탈, 해방감의 표출로 그럴 듯 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일례로 본인의 성장과정에서 자주 들었던 이야기는

" 야!! 니가 어떻게 A형이냐!! 넌 닥치고 B형이야!! "

 

였고 최근에는 조금 메타가 바뀌어 "야 니가 어떻게 i(내향)냐!!너는 닥치고 E(외향)야"

 

이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기분일 뿐이고, 아마 내적인 에너지가 긍정적으로 표출되어서 일 수도 있지만

 

저는 누가 뭐래도 내성적인 인간입니다.

 

왜냐, 지속가능성이 없다.

 

따라서 학창시절 외향성 인간이 부러워서 쫓아가고 발전하고 고치려고 했던 본인은

 

그 기질적 태생적 한계를 보았기 때문에 수퍼인싸라는 안맞는 옷은 과감히 벗어버렸습니다.

 

아, 물론 성격계도에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량이 무한하다면 한계는 없습니다.

 

아무튼 저렇게 고생을 사서할 수 있는 인간은 홍대에서 1시간 죽때리면 20명 정도의 번호를 딸 수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그렇다고 느끼는)인간은 1시간 죽때리면 내상입고, 길이나 물어보며 3~4명 정도의 번호만 딸 수 있을 것 입니다.

 

다만 내향적 인간의 무기는 피드백에 있습니다.

 

자신의 무기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다면 쓰린 마음을 달래며 다음 기회를 노려볼 수 있고,

 

부정적인 발현은 "에라이 내 주제에 무슨 헌팅이냐.. 조용히 지질하게 살어야겠다."

 

가 될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미친듯이 노력해서 10명정도 따낼 수 있었을 뿐이고,

 

포기하지 않는 다면 "번호따기" 라는 목표는 모두 이룰 수 있습니다.

 

허나 소비된 에너지와 마음에 깊이 박히는 내상등을 고려한다면 지속가능성은

 

외향인간보다 월등히 떨어집니다.

 

 

여기서 논제가 나옵니다.

 

포기하면 편한데

 

왜? 고생을 사서해야하냐.

 

 

2. 패배자 마인드.. 라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쉽게 포기하는 유형의 관점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돼? 어차피 다 써먹지도 못하는거

 

왜 연애를 해서 돈을써야돼? 어차피 혼자쓰면 풍족하게 누리고사는데

 

왜 국민연금을 내야돼? 어차피 늙으면 받지도 못하는거

 

왜 식단조절을 해야돼? 어차피 먹을거 맘놓고 처먹지

 

왜 저렇게 아둥바둥 살아가냐? 어차피 늙으면 뒤질꺼

 

 

 

외향이든 내향이든 포기하면 편합니다.

 

포기하면 편하기 때문에 시도를 하지 않는 인간들이 보통의 인간 군상입니다.

 

사실 동북아에서 한국만큼 열심히 사는 나라도 없습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초토화가 되고 나서 제로베이스로 복구하는데 얼마나 걸렸죠?

 

불과 몇십년만에 대한민국이 이뤄낸 것을 보십시오.. 미쳤습니다.

 

유유상종이라고 하지만 진짜 노력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쉽게 포기하는 유형의 인간은 사회적 가치가 낮기 때문에 주변에서 감히 쉽게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노력하는 인간들을요.

 

그래서 본인의 처지에 안주하게 되고,, 심지어 요즘에는 주변인을 만들기 어렵기에 고독하게 버티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들은 안타깝지만 쉽게 포기하는 유형의 사람일 확률이 높았습니다.

 

우리는 언제 극단적인 포기를 결심하게 될까요.

 

그것은 스스로의 에너지가 고갈되었을 때, 주변에서 받을 수 있는 에너지 조차 없을 때, 그리고 희망이 무참히 짓밟혀서 어떤 꿈도 꿀 수 없다고 스스로 납득해버린 순간 일 겁니다.

 

사건이 크고 작다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다가올 뿐이지 포기해버리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분명히

 

너희들은 도대체 어떤 에너지로 그렇게 행복할 수 있는 것이고,

 

어떤 에너지로 어떤 뒷배로 어떤 배경으로 어떤 자산으로 그토록 원하는 것들에 짓밟히면서

 

버티고 일어설 수 있는가.. 의문일 겁니다.

 

 

허나 문제의 답은 저는 꽤 간단하게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보통 진리는 아주 간결한 문제에 아주 간단히 대답할 수 있는 한 문장입니다.

 

말이 쉽지 라고 방어기제를 펼칠 때, 들었던 그 말이 보통의 해결책입니다.

 

다만, 자신의 한계를 낮게 설정하고, 또는 성향의 한계로 노력하지 않은 대가로 포기라는 반강제적인 선택에 놓인 것 뿐입니다.

 

 

 

3. 아니, 그래서 고생을 왜 사서하는건데?

 

간단한 그림을 그려서 설명드리겠습니다.

 

 

벽은 넘으면 계단이 됩니다.

 

 

 

우리는 보통 벽을 넘으면 다시 기존과 다름없는 평지가 펼쳐지거나 또는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벽 앞에서 널부러져 있던 뒤로 돌아가던 거기에 그냥 죽치고 앉아있던 넘고나면 계단이었던 걸 느낍니다.

 

인생은 고통이며 끊임없는 벽의 연속입니다.

 

계단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채 계속 벽을 넘다보면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 아.. 어느새 이만큼이나 올라왔구나.. "

 

 

이걸 깨달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고생을 사서하는 사람들.

 

 

 

내가 내향적인 사람이든 외향적인 사람이든 상관없이

 

인생은 벽(사실은 계단)의 연속입니다.

 

인간은 그 벽을 뛰어넘어야만 다음 계단에 오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경험보다 더 나은 스승이 없는 이유입니다..

 

이론을 많이 쌓아도 실행해보지 않으면 벽이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습니다.

 

벽을 넘어보지 않으면 그것이 계단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계단이라는 개념은 벽을 넘어온 승자들만이 느끼는 개념입니다.

 

또한 한 번 넘어온 벽(계단)은 언제나 같은 높이였지만

 

한 번 넘어봤다고 다음에 비슷하거나 더 높은 벽(계단)이 있을지라도

 

벽을 오르며 터득한 노하우와 길러진 체력으로 전 보다 쉽게 넘을 수(오를 수)있습니다.

 

 

인생은 마라톤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부디 일부러 벽을 느끼고 넘어서 많은 계단을 오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꽤 벅찬 벽을 힘차게 넘어서서 뒤를 돌아보고

 

발아래로 펼쳐진 찬란한 나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길 바랍니다.

 

계단 오르기만 급급하면 숨차서 죽습니다.

 

한번씩 뒤도 돌아보고 경치도 감상하면서

 

덜 소유하고 더 존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