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썰푼다

목수 1년차 후기 ㅡ 2부

덜소유구도자 2018. 4. 23. 23:52

목수 1년차 후기 ㅡ 1부 ☜클릭

전편에 이어서 미세먼지 떡상 봄특집으로 목수 1년차에 대한 후기를 작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부에서는 본격 내장목수 진입하고 여러현장 맡으면서 있었던 일과 느낀점에 대하여

작성해보겠어요.


.17 .08 (못주머니 처음구매 실화냐?)

목수일을 꿈꾸며 헛짓거리아닌 헛짓거리를 오랜기간 해온 끝에

동네에 있는 인력 사무소에 갔어요.

인력 사무소에서는 어린 친구가 이일저일 적응못하고 전전긍긍하는게 안타깝다고

인력사무소장은 지인들에게 여러차례 통화를 하고 아들같은 나이뻘에 안쓰럽다며 점쟁이를 소개시켜주는

이상한 결말을 맞이했지만 점보러 가지는 않았어요. 왜냐면,

내 적성 맞고 내가 하고싶은 일 있으면 그게 마이웨이지 점쟁이한테 내 미래를 부탁하고 싶지 않았어요.

fuck you 샤머니즘!! 

길이 하도 안열리길래 내길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그 생각은 8월에 사라졌어요.


인터넷 구인구직란에 김반장님이 용인에서 초보목수를 구한다고 하였고,

그길로 짐싸서 출동을 했어요. (일면식 없었음)

커피 박물관을 짓는 일이었는데, 어떻게 못주머니도 없이 오냐고 핀잔을 들었어요.

나는 여태까지 일하면서 못주머니라는 것을 들어본적이 없었거든요.

그도 그럴것이 알바나 인테리어회사에서는 못주머니가 굳이 필요없었거든요.

그 길로 다음날 목수연장을 구매하였어요.



못주머니, 칼, 망치, 니퍼, 줄자, 연귀자 등 7만원 어치 구매를했죠.

그렇게 깔짝이 아닌 본격 타카질과 줄자질이 시작되었어요.

근데 더 끔찍한건 나말고도 도착한 몇몇 사람들이 

못주머니도 없이 현장에왔음ㅋㅋㅋ 지금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네요.


일이 시작되고 며칠동안 반장님은 팔하나 눈하나 없는 병신 외인구단들이 왔다고 오만 개짜증을 냈어요.

일주일이 지난 후에는 못주머니도 없던 저희 초보목수들에게 

너희는 어벤져스다 라고 친창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후로도 욕은 끔찍하게 많이먹었어요.

제가 군대에서도 듣도보지 못했던.. 아니 지금까지도 돌아보면 

그렇게 쌍욕잘하고 다혈질인 반장님은 본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실력하나는 제가 본 목수중에서는 원탑이에요.. 개잘합니다.

목수를 위해 태어난 사람같아요.


이 현장에서 석고, 가베, 사다리(호네), 각도절단기 사용법, 폼건 사용법, 달대 사용법, 타카 사용법을

몸에 숙달되게 반복적으로 많이 익혔네요.

석고치는 건 8월에 기틀을 다 잡았다고 봐야합니다.

내장목수 첫입문을 도와주신 아주 고마운 반장님이지만 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아요.

석고 곰방이며 다루끼며 합판이며.. 

여러가지로 엄청나게 많은 걸 배운 현장입니다.

기본기를 빠른시간내에 다지고 바로바로 작업선에 투입되어야하는 스파르타식 교육?현장이었죠.

현장 막간에는 7명이었나 8명이었나 초보목수들끼리 한 섹션씩 맡아서

석고 가베를 치는 챌린지 경기가 있었습니다.

준비 땅! 하면 시작해서 제일 먼저 마무리하는 사람 짱짱맨. 이런 내용이었죠.

나는 반장님이 가르쳐준대로만 자질하고, 호네짜고, 석고치고, 몰딩 돌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제일 먼저 했어요. 진짜 설렁설렁했는데 사람들이 느린지..

내가 빠른지 1등이었고, 사랑하는 일에서 이룬 순간이었기때문에 굉뿌.

갱장히 뿌듯했습니다. 이후로 김반장님에게 발탁되어 몇번더 같이했습니다.


저도 초보지만 빨리하려고 서두르다가 다치고, 엉성하게 하고 넘어가고 나중에 하자나거나 대나오시(다뜯고다시해)가 나는 경우엔 시간은 더버리고 일도 못치고 나가는 상황이 벌어지니까


차라리 본인의 한계를 인지하고 숙련된 후에 속도를 올리는게 더 나은 방법인 듯 합니다.

날림으로 일하는게 몸에 정착되면 교정하는 시간은 정착된 시간보다 더 어렵고 길거에요.

반장님들도 초보에게 지불할 노임이 기술자에 한참 못미치다는 걸 자각하고, 보채기 보다는 작업에 익숙해지게 끔 유도하는 쪽 이 더 옳다고 봅니다..

실수 안하고 빨리 하길 바라면 기공을 부르는게 옳음.


다시 돌아와서 용인 커피샵 공사는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어요.

중간에 인부다시나 뭐 여러 돈문제로 현장이 빠다리 나면서 한달남짓정도 일하고 올라왔거든요.



.17 .09 (전남 순천 모텔현장)


후에 김반장님에게 받을 돈을 몇십만원정도 남겨두고 일이 없으니까

급한대로 전라남도 순천까지 내려갔어요.

처음에는 순천만도 보고 명절보내면 개꿀띠겠구나 생각했는데

일이 너무 바빠서 명절전날까지도 일을하다가 개빡쳐하며 짐바리바리 싸서

친가에 바로내려갔습니다.


남반장님네 노인들이랑 같이 일을 했는데..

한방에서 대여섯명씩 숙식하고.. 어우.. 지금 생각하면 개끔찍하네요.

그래도 노임은 바로바로 나왔습니다.

이 현장에서는 딱히 배운게 없어요. 그냥 일하는거 구경이나 한 듯..

실력도 애매해서 나서기도 그렇고 그냥 밑에서 시키는거나 했습니다.

하지만 노인들과 세대차이가 너무 많이나고 또 제가 노인 어색증이 있어서

일끝나면 밥먹고 헬스장가서 운동조지고 왔네요.




.17. 10 (신촌 뷰티샵 외)


여기서는 다시 오랜만에 김반장님과 조우해서 뭐 네일하트하고 왁싱하고 이런 샵 공사를 했습니다.

이 때 당시에 개인적으로 안좋은 일이 엄청 많이 터졌었죠.

멘탈이 많이 붕괴된 상태에서 오랜만에 만난 반장님께 쌍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실력이 많이 줄었긴 했습니다.

순천현장에서 한달동안 시다바리만 하다보니까 실전감각이 완전히 떨어졌어요.

한일주일 지나고 감은 찾았지만 80년대 도제키우기도 아니고 쌍욕은 어찌나 여전하던지.

이 현장도 결국엔 돈문제로 빠다리가 났어요.

후에 인천 송도에 쌀국수집 인테리어 해주다가 또 빠다리가 났어요 ㅋㅋㅋ



.17 .11 (김포 컨테이너 내부 시공)


여기도 김반장님의 러브콜로 일이 들어갔죠.

가베, 덴죠, 몰딩, 루바 등등..

정말 기본적인 일이었습니다만,

당시에 법정싸움에 휘말려 굉장히 멘탈이 힘들었습니다.

18년 2월에 1심 무죄판결이 나긴했지만 피말리더군요.

이제 명예훼손 안걸리고 세상에 정의를 고발하는 법을 깨우쳤습니다.


또 인간관계문제도 생겨서 역대급 멘탈이 휘청이던 시간이었죠.

그런 정신상태로 일을 하니까 사람이 알던것도 못하게되고, 오차도 터무니없이 50미리 이런식으로 나더군요.


저는 실패에 관용이 있습니다.

도전에는 실패가 95이고 성공이 5정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인격이 자란다고 생각해서 웬만한건 사서 경험하려고 애를 쓰는 편입니다만,

실수에는 너그럽지 않습니다.

이말은 실수에 민감해서 스스로 잡아주려고 집중을 많이 한다는 말입니다.


초보자는 평소에 잘하던것도, 갈굼이 시작되는 순간

무한의 실수가 이어집니다.

한번 대나오시(일실수)는 그날 끝날 때까지 대나오시 라는 말도 있습니다.

남자들은 군대 이등병 짬밥 때 많이 느낍니다.


지금 같았으면 녹음해뒀다가 변호사 사무실에 쫓아가 모욕죄 협박죄로 고소를 논의하거나

똑같이 씨팔 족팔 찾으며 지랄하고 나와버렸을 겁니다.


까딱하면 손가락 날라가는게 이일인데 일을 하면 안되는 컨디션이었죠.

그렇게 참다참다 반장은 못버티겠는지 

쌍시옷 몇개 날리더니 왕타카를 집어던지고 나가버렸습니다.

한참 후에 소주한병 까고 돌아오더니 미안하답니다.

"초보니까 당연히 실수하는데 내가 지나쳤다."


며칠후 일마무리만 해주고 20만원 어치의 못주머니와 장비들을 현장에 내팽겨치고

형님처럼 따르던 반장님과 연락을 끊었습니다.

그일로 집에 돌아와 다시는 목수일 안하려고 했습니다.



.17 .12 ~ .18. 01 (휴직기)


12월초부터 1월말까지 멘탈 회복 기간이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 연락처 다 지우고, 반장님 전화번호 차단하고 잠수탔습니다.

중간중간에 일할 컨디션이 회복되었다고 생각할 때 쯤 한번씩 날일을 나가긴 했습니다.

은평한옥마을 커피숍이라든지, 동두천 생연동 커피숍이라든지..

근데 은평한옥마을에서 또 다른 반장님이 나한테 다시한번 정신적인 상처를 줬습니다.

네네 하니까 치킨인줄 알았나봄.


이 사건들 이후로 현장가서 최대한 입다물고 시키는거만 하고 집에갑니다.

예의를 갖춰서 공손하게 굴면, 그걸 이용해서 사람을 천시여김 호구로봄

이일 하면서 다른 현장에서 만난 30대 형님 두분이 대답도하지말고 일만똑바로 하랬는데..


왜그랬는지 지금 이해했습니다.

일터에서 만난 윗놈들은 어떻게든 아랫놈을 조지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본인이 실수해놓고 떠넘긴다던지,

석고 2p 마감인데 1p에 틈이 약간 있다고 갈군다던지,

치수 불러준대로 재단해줬더니 본인이 자질 잘못해놓고 내탓을 한다던지,

무궁무진한 갈굼소재를 만들어서 조집니다.

심지어는 스미(먹줄팅구기)놓는데 용두가 튈까봐 손가락에 한바퀴 말아쥐었더니

왜 그따위로 잡냐고 갈구는 반장도 있었습니다. (개목수세요..?)


새싹밟으려는 심보가 한국인에게 존재한다는건

내가 27년 살면서 얻은 몇 안되는 인생의 진리중에 하나입니다.

물론 다그런건 아닙니다.

초면에 그런분 안그런놈 구분이 안됩니다.

감투쓰기전에 인성이 먼저 되십쇼.

더러워서 같이 일 하겠습니까..



.18 .02 ~ 18. 04 (남양주시 진접읍 단독주택 신축)


내가 힘들 때 언제나 먼저 전화를 주셨지만

나는 심신이 힘들어서 전화를 두달간 피했던 형님이 한분 계십니다.

반장님들 연락처는 싹다 삭제했지만 이 형님 만은 유독 전화를 계속 주시덥니다.

그래서 감동하여 행차를 하였죠.



묵묵히 일하다보면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그사람한테는 최대한 잘해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꾸준한 컨택으로 감동시켰던 이 형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엔 잘해주니까 또 갑질이 시작되더군요..


결론


아무튼 이래저래 힘든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만

결국 기술습득하는 것도 본인, 일하는 것도 본인,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본인 입니다.


경력대비 일을 굉장히 잘한다는 칭찬을 종종 듣습니다.

오늘도 일하는데 초목 불렀더니 기공이 왔냐고

반장님이냐고 물어보시더군요.

이럴 때는 으쓱하다가 또 어려운거 하면 찌그러지고ㅋㅋ


반장님마다 현장마다 방식이 다르고 서로 맞춰가며 웃으며 일끝내고 오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처세할 생각도 없고, 똥꼬 빨리거나 빨아줄 생각도 없습니다.

내가 행복하려고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요즘.. 웃으면서 일하기가 참 힘듭니다.


성격파탄자, 아벌구, 연장콜렉터(남의연장집에가져감), 지루(노인들이많음),  조루(일빠르고 하자존나많이냄), 묵언수행자 등등..

굉장히 많은 빌런들을 마주하고 있는데..


말보단 행동으로 묵묵히 자기일 잘하는 사람이 갑입니다.

그 근거로 저는 8개월만에 일당 3만원 떡상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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