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인 생각

좋은과거 나쁜과거 좋은미래 나쁜미래

덜소유구도자 2024. 9. 29. 23:48

생각은 현실이 아니다.
 
고로 생각이 줄어들수록 건강해진다.
 
 
 
안녕하세요 덜소유구도자입니다.
 

 
 
 
생각이 줄어든 만큼 정신이 건강해진다.
 
왜?
 
 
1. 나쁜과거
 
그것은 후회와 떨어지는 자신감이다.
 
2. 나쁜미래
 
그것은 걱정과 근심이다.
 
3. 좋은과거
 
좋았던 때로 돌아가 잠시 현실을 잊어본다.
 
4. 좋은미래
 
희망을 떠올리며 안식을 얻는다.
 
그러나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것, 
 
회상이나 희망은 현재를 살지 않는 것이다.
 
라는 접근입니다.
 
 
불교방송에서 나온 말이니 붓따의 가르침을 보자면
 
부처님은 상념에 빠질바엔 잠이나 퍼질라자라 라고 하셨습니다.
 
[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바로 다른 생각을 하게되어 생각을 멈춰야할 때 마저도 생각을 멈출 수가 없어서 나쁜 생각으로 결국 이어져버린다.
 
생각이라는 것은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이 서로 밀접하게 붙어 상호작용을 하기에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않는 것이 좋다. ]
 
라는 말씀을 전합니다.
 
 
이거야 말로 럭키비키를 거스르는 발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허면 마음의 건강을 위해 수행하는 불교에서 왜 생각을 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볼까요?
 
그것은 불도에서 말하는 번뇌 때문입니다.
 
 
 
번뇌라는 것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생각에 의해 파생되는 괴로움을 말합니다.
 
우매한 중생들은 번뇌에 시달립니다.
 
번뇌는 마음 건강 뿐만아니라 몸의 건강까지도 해칩니다.
 
그것은 현대에서 스트레스라고 말합니다.
 
 
번뇌 즉, 생각에 의해 파생되는 괴로움으로 업보스택을 쌓고,
 
그로인해 힘든 세상을 돌고 돌며 살아간다.
 

제가 불자가 아니라 그 깊은 뜻은 헤아리지 못하겠지만,
 
그래서 이런 처방을 내리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 너는 생각이 많구나.. 108번의 절을하며 몸을 힘들게 하여 생각을 멈추거라.
 
 
이는 현대에서 우울증을 치료하는 비약물 방식과 비슷합니다.
 
밤에 잠이 오지 않고, 마음이 괴로운 것은 부정적인 생각에서 기시한다고 봅니다.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생각이 언뜻보면 좋아보이지만
 
상기 언급한 바와 같이 결국엔 나쁜 생각도 함께 수반하므로 그냥 뇌를 비우고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코도 없고, 입도 없으며, 마음도 없고, 몸도 없고... 그런 삶이여라.
 
차라리 그러면 생각으로 발생되는 고통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생각은 정말 적게 또는 아예 하지 않을수록 좋은걸까요?
 
 
생각이 많으면 속이 깊을 수 있지도 않을까.. 싶은데
 
속이 깊다는 것은 그만큼 혼란스럽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하나의 작은 일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되면 그만큼 속에서는 스스로 불러낸 복잡한 처리과정이 발생하니까요.
 
그야말로 세상살이를 복잡하게 합니다.
 
또, 생각이 많아지면 아는 것이 많아질 것이라 여기지만 반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옳을까 저것이 옳을까를 판단하는 것은 선택을 위함입니다.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생각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선택과는 더 멀어지고,
 
그냥 이것도 모르겠고 저것도 모르겠다... 싶은 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 경험들을 많이 해보셨을 겁니다.
 
 
 
그래서 결국 공(空)의 개념으로 들어갑니다.
 
이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야! 그게 뭐가 중요하니 우리는 그저 우주의 먼지 찌끄레기들일 뿐이야.
 
먼지 찌끄레기가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아?
 
니가 사는 세상이 영원할 것 같냐?
 
천년 만년 살다가 가냐?
 
어차피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세상이야~ 한잔해~
 
 
뭐 그런거죠.
 
 
맞습니다.
 
우주와 이 세상, 양자역학 등에 대해 심도깊게 관찰하고 고민하다보면
 
야 지금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아둥바둥살까..
 
한낱 미물일 뿐인 인간나부랭이인데.. 싶기도 합니다.
 
 
세상에 뭐가 그렇게 욕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많이 쥐고도 사느냐
 
전부다 내려놓자.. 해서 나오는게 무소유, 무소비 챌린지도 하고,
 
제가 슬로건으로 밀어붙이는 덜소유더존재와 같은 맥락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어떤가요?
 
당신이 하는 생각은
 
정말 필요한 생각인가요?
 
당신이 갖고자 하는 물건은
 
정말 필요한 물건인가요?
 
정말 그 때 플렉스를 했더니
 
그만한 값어치의 행복이 찾아오던가요?
 
아무런 후회도 없던가요?
 
그럼
 
세상에 정말 인간은 무념무상으로 지내는게 올바른 삶일까요?
 
 
적어도 무념무상인 사람에게는 세상사 번우한 일은 없을 겁니다.
 
왜냐면 아무 생각이 없거든요.
 
 
이것은 서양에서의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근현대 철학에서는 다른 늬앙스로 전달합니다.
 
그리스 철학에서는 감정에 치우지지 않는 이성적인 사람이 되는 것을 지향했습니다.
 
데카르트는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라며 생각이 존재의 본질이라 여겼습니다.
 
칸트 역시 생각을 하기에 세상이 형성된다고 여겼습니다.
 
서양철학에서는 [생각] 이라는 것을 인간의 본질이고, 감정이 아닌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내 세상과 존재를 탐구하는 중요한 [수단] 이라고 여겼습니다.
 
 
언뜻보면 서로 상이한 주장이라고 여겨질지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에서 공통적인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미래도, 좋은 과거도 떠올리지 말고, 현재를 살아가며 행복해라.
 
다양한 생각을 통해 세상과 자신을 탐구해라.
 
결국 인간 존재를 위한 말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것을 쉽게 멈출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주 많은 마음 수련을 통해 갖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렵습니다.
 
우리는 계속 덜어내고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더 갖고 풍요로워지기 위해 애쓰는 것 보다
 
가진 것에 만족하는게 더 쉽습니다.
 
그리고 더 갖고 풍요로워지는 것은 결론적으로 만족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더 갖고자 함은 결국 욕심이고, 욕심이 있는한 마음은 절대 평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안하고 더 갈망하게 됩니다.
 
 
혹자는 자꾸 개인의 발전을 방해하는 나쁜 사람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그동안 죽어나간 부자들이 하나같이 입을모아 하는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내라
 
너 자신을 더 돌봐라
 
같은 말들은 별 의미가 없는 말이어야 합니다.
 
 
돈은 결코 다다익선이 아닙니다.
 
많은 돈이 있어봤자 이 넓은 세상을 다 향유하지도 못 합니다.
 
그 누구도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을 만나고, 모든 것을 하고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많이 알고, 많이 경험할수록 현생을 살아가기가 힘들어지죠.
 
왜?
 
바다도 좋고, 연못도 좋은데
 
고래를 연못에 넣으면 죽고, 피라미를 바다에 놔도 죽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짬뽕을 먹고나면
 
내가 가장 자주 접할 수 있는 짬뽕은 그저 잠봉일 뿐이거든요.
 
과거의 영광, 미래의 영광, 그리고 추억하며 현실도피, 미래의 희망고문..
 
 
하나 하나 놓고보면 모두 맞는 말이고,
 
결국 나 자신에게 무엇이 이득일지 잘 판단해야합니다.
 
돈이 행복을 결정한다면 부자들은 아무도 불행할 수 없습니다.
 
 
행복은 살아있는 시간동안의 누적입니다.
 
돈은 그저 짜파게티 먹을거 짜장면 먹는 정도면 충분하거든요.
 
그리고 짜장면이 더 고급진 음식일지라도 짜파게티도 분명히 생각날 때가 있고 맛있걸랑요?
 
현재의 행복스택을 계속 쌓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좋은 미래도 있고, 좋은 과거도 있습니다.
 
어제와 지금, 그리고 내일
 
내가 살았고, 살고, 살아갈 시간들은 모두 그 시간을 살아가는 현재의 내가 쌓아갑니다.
 
 
행복한 삶을 살다가 죽어도 후회가 남을진데
 
굳이 부정스택을 쌓아갈 필요가 있을까요?
 
자꾸 부정적인 생각에 휘말린다면 붓따의 가르침처럼 차라리 생각을 하지마세요.
 
내 욕심으로 계속 우울한 날들을 쌓아간다면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내가 너무 비참하잖아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할지 아직도 갈피를 못 잡겠다면,
 
 
덜 소유하고 더 존재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어떤 선택을 해나가야할지 점점 뚜렷해질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