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인 생각

당신은 내일 죽을 수도 있습니다.

덜소유구도자 2024. 2. 25. 15:49

안녕하세요 덜소유구도자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인간은 미물입니다.
 
너무 하찮아서 피할 수 없는 질병에 걸려 죽기도 하고,
 
길을 걷다 떨어지는 투척물에 머리를 맞노라면 저항도 없이 그날로 사망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쉽게 간과하고 (또는 의도적으로 인지하지않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그럴 가능성이 꽤 확률적으로 높다고 하여도 그것을 걱정해봐야 당장의 현실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저 멀리 달에서 지구를 쳐다보며 짓는 생각과 같습니다.
 
저 멀리 지구에서는 개개인이 각자의 생각들로 각자의 인생을 진지하게 대면하고 지내는데
 
나 혼자 멀리 떨어진 이 달에서 그런 인간이라는 미물들의 고민거리에 대해 고뇌해보려고 노력해보려고 한다면,
 
역시 나는 저 멀리 떨어진 지구의 인간들의 개개인의 속사정에 대해 그다지 다양하고 속깊게 공감할 수 없습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인간은 사회라는 시스템 속에 살아갑니다.
 
가족에는 가족의 규율이 있고, 학교에서는 학교의 규율이, 회사에서는 회사의 규율이, 국가에서는 국가의 규율이, 지구에서는 지구의 규율이, 인간계에서는 인간들의 규율이 존재합니다.
 
그런 거대한 시스템들의 입장은 마치 저 멀리 떨어진 달에서 지구를 내려다 보는 것 같습니다.
 
개개인의 인간이 모두 그 자체로 응당 존재의 의의가 있으며, 존중받아야할 존재들일지언정
 
달에서 바라보는 지구와 같이 속깊게 이해해주고 싶어도 그 존재를 들여다 보고 싶어도
 
맨눈으로는 절대 처다볼 수 없고, 헤아리려고 해봐야 허울 뿐인 껍데기와 같아서
 
당장 맞닿아 볼 수 있는 것은 지구라는 것의 동그란 생김새와
 
바다, 대륙, 구름, 그림자와 빛과 같은 거대한 구성요소들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시스템의 입장에서는 인간 개개인 보다는 더 큰 입장을 헤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이 거대한 톱니바퀴와 아주 미세하게 작은 톱니바퀴의 구성으로
 
오밀조밀 섬세하고 거대하게 굴러간다는 사실과 그렇다고 개개인의 입장에서 각자의 존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리고 아주 작은 미세한 톱니바퀴와 지구라는 시스템의 거대한 톱니바퀴 사이의 간극에 대해
 
우리가 늘상 고민하려 들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각자의 입장에서 저마다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이기적으로 쳐다보고 생각할 수 밖에 없으며
 
설령 해줄 수 있는 배려가 있다고 한들 그 배려가 해당 존재에게 얼마나 이로울지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적는 저 또한 제 자신이 가장 소중한 존재인 것 처럼
 
여러분들의 입장에서는 각각의 자신이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합니다.
 
 
제가 전달드리는 메시지는 이렇게 각자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에 대한 입장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나를 끔찍이 여기듯, 당신도 당신 자체를 끔찍이 여긴다 라는 이성적인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당신은 당장 내일 사고로 죽어버릴 수 있음에도 왜 그토록 많은 것들에 대해 헤아리고 살아가나요?
 
그 이유는 내가 내일 당장 죽어버린다고 생각하고 살아도 이 시스템을 바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이 거대한 톱니바퀴들 사이에 낑겨진 고장나도 티도 안날 미물 톱니바퀴중 하나일 뿐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가 이추룩 한없이 보잘 것 없을 지언정
 
나보다 소중한게 어딨냐는 말입니다.
 
 
그저 매일 당연하게 내일이라는게 오고 있으니까
 
내일 정상적으로 눈뜨지 못할 확률 vs. 내일 정상적으로 눈뜰 확률을 비교해보면
 
압도적으로 내일 정상적으로 눈을 뜰 확률이 높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시 여겨지며
 
내일이 오지 않을까라는 해결하지도 못할 고민보다는 당장 배고프니 먹어야할 식사메뉴를 고민하는게 훨씬
 
실생활과 내 피부에 꼭 와닿는 고민이라는 이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거룩하게도 인류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덜소유하고 더존재하는 길이라고 제시해봐야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속에서 순응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닿는 목소리일뿐이라는 것과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속에서 경쟁하고 싸우는 사람들에게 닿지 않는 목소리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지구에서 자본주의와 개인의 존재는 마치 거대한 마차와 그 마차를 끌고가는 말과 같습니다.
 
개인이 아무리 왼쪽으로 가자고 열심히 발버둥쳐봐야 80억 지구인이 오른쪽으로 향하고자 한다면
 
나는 그저 줄에 묶여 끌려가는 말이될뿐입니다.
 
이 상황에서 당신이라는 미물이 내 생명하나까지 버려가며 왼쪽으로 가자고 해봐야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마차가 우측으로 가고자 한다면 당신은 그저 채찍질이나 한 번 더 처 맞을 뿐이죠.
 
중국이 사회주의요 공산주의요 열심히 피력해봤자 그저 자기들 나라에서나 먹히는 사상일뿐
 
그 대륙이 뻗치는 발 밖으로 나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올가미는 쉽게 벗어던져버리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마차(시스템)와 말(개인)의 간극입니다.
 
순응하는 존재들은 이 사실을 인지하고 거대한 시스템을 주체적으로 따르거나 버릴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경쟁하고 싸우는 존재들은 저항하며 올가미가 제 목을 조여오는지도 모르고 용쓰다가 죽거나 질질 끌려다닐 뿐입니다.
 
 
저는 이렇게 질질 끌려다니다가 죽어버리는 사상을 무소유 사상이라고 쉽게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차라리 범인류적인 소유권에 대해 올바르게 주장하고, 그 시스템속에 순응하여 이용해먹는 것이
 
조금 더 자유로운 의지로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이 시스템은 이미 완고하게 끌고가는 거대한 마차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내일 벌어질 불운의 사고에 대해 그저 달에 몇천원에서 몇십만원 정도 하는 보험금을 납부하며 의지하는 것 또한
 
자본주의 시스템에 순응하여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중에 하나일 것 입니다.
 
 
그 수많은 확률중에서 좀 더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선택일 뿐
 
개인이 올가미를 풀어던지고 자유롭게 초원을 활보하려면 시스템이 닿지 않는 영역으로 도망가거나
 
올가미를 벗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열심히 뛰고 끌며 달리는 여러 말들 사이에서
 
열심히 끌고 달리는 척하며 적당히 뛰는 척 정도 하는 잔머리가 바로 덜소유 더존재 사상입니다.
 
 
더럽게도 야비하고 치졸한 사상이지만 이토록 시스템과 개인에게 모두 이로운 사상이 없습니다.
 
결국엔 쓰고 버릴 말일지라도 말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마차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일치하고
 
마차가 기대한 마력(馬力)정도에만 부응한다면 채찍을 맞을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누구하나 패배하는 방편이 없는 win-win 전략아닐까요.
 
 
당신이 발버둥치며 win-lose 전략을 쓰든
 
질질 끌려다니며 lose-win 전략을 쓰든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한채 별생각없이 lose-lose 전략을 쓰든
 
사실상 제 입장에서는 알빠노 입니다.
 
 
그러나 내가 내 인생을 소중하게 여기듯이
 
당신도 당신의 인생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무엇이 모두가 행복한 방향일지에 대해 한 번 쯤 고사해볼만 하지 않을까요.
 
 
저는 결국 질질끌려다니다가 찾은 방법이 이것입니다.
 
그리고 말에게도 마차에게도 모두 이로울 수 밖에 없는 실현가능한 이상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한 덜소유 더존재 마인드 만큼 훌륭한 자기합리화도 없을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