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인 생각

자본주의에 순응할수록 극도로 불안해진다.

덜소유구도자 2024. 1. 28. 16:16

안녕하세요. 덜소유구도자입니다.

 

자본주의에 순응할수록 극도로 불안해지는 이유와 그럼 어떻게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을 꽤 오래하다보니 잠시 멀리 했었던 에피쿠로스 학파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지기 위한 투고입니다.

 

여러분들도 제가 정리한 생각들을 통해 사색에 잠겨서 개인적인 판단을 기울여 보시길 희망합니다.

 

 

아래는 제가 생각하는 정의입니다.

 

자본주의는 [너와 나, 우리 그리고 모두가 자신을 위해서 경쟁하여 쌓는 이타적으로 보일 자산모음집] 입니다.

 

자본주의의 목표는 [그렇게 모은 자본들을 가지고 더 많은 자본을 눈덩이처럼 불려나가서 잘 살아보자] 입니다.

 

자본주의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 세 가지를 꼽자면 [이기심, 경쟁심, 돈] 입니다.

 

왜?

 

[이기적]이어야 능동적인 주체로 자산을 불려나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경쟁]을 해야 생각이 없던 놈들도 엉덩이에 불 붙은 마냥 펄떡거리며 쫓아들 것 입니다.

 

그렇게 모두가 저마다의 입장에서 쫓아가서 쌓이는 것이 [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기의 개념들이 삼위일체가 되었을 때, 자본주의에서 가장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우리의 세계를 둘러싼 사상중에 가장 성공적이고 보편 타당한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어느 사상이나 장점과 단점이 존재합니다.

 

칼 마르크스가 제안하고 다듬어진 공산주의는 그 사상 자체만 놓고보면

굉장히 합리적인 사상중에 하나지만 성공할 수는 없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는 인간에게는 인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살펴보기 위해서는 인간성을 꼭 챙겨가야 합니다.

 

이 인간성 중에 추잡스럽지만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부분들을 자극해서

미친폭주열차를 몰고가며 요동치게 하기에 가장 파괴적인 역량을 과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성공하기 위해 자극하는 인간성의 요소들이 제법 많은 사람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합니다.

 

정치적인 색안경을 빼고, 세계를 둘러싼 이 거대한 시스템을 파고들면

자본이 없어서 불안한 사람들과 자본이 많아서 불안한 사람들 사이에는 ' 양극화 ' 라는 키워드가 따라붙습니다.

(일론머스크도 불안에 떨며 기업운영하기 싫다고 찡찡대는데.. 자본은 핑계고 그냥 마음이 불안한 것)

 

이 양극화는 자본주의에서 조율해야할 가장 큰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많이 가진 자본가들은 더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하지만 자연계에서 나오는 자원(리소스)은 한정적입니다.

 

그래서 종국에는 포스트아포칼립스 매드맥스 같은 세상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물이 존니 많은 자본가와 물이 존니 없는 일반인들로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회정치문화관련자들이 이러한 체제의 부작용으로 인한 멸망을 막기위해 열심히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속에서 제가 덜 소유하고 더 존재하자고 하면,

 

자본주의적으로는 별 도움이 안되는 소리입니다.

 

저게 할 소린가... 싶을 정도로 자본주의에서는 도움이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들을 이미 졸라 예전부터 하던 철학자들이 있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그 유명한 에피쿠로스를 예로들면, 기원전 300년 쯤에 있던 사람인데요.

 

전에도 한 번 언급한적이 있는데 쾌락에 대해서 고민하고 행복에 대해서 고민했던 사람입니다.

 

전쟁과 약탈이 난무하고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이 잘 안되던 시절에도

이러한 사상에 대한 고뇌들이 굉장히 심도깊고 분명하게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들은 현대에 똑같이 가져와도 똑같이 심오한 문제입니다.

 

에피쿠로스는 그의 친구들(대략 6명쯤으로 알고 있습니다.)과 함께 그들만의 낙원이라고 볼 수있는 가든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색들을 거쳐 가든에서는 중요한 명제들이 적립되었습니다.

 

" 쾌락에 필요한 최소 조건만 채우고, 나머지는 행복을 위한 것들로 채우자 "

 

상기 명제는 제가 늘 말하던 " 덜 소유하고 더 존재하자 " 라는 슬로건 유사합니다.

 

이 말인 즉,

기원전 300년에 하던 고민이나, 기원 후 2000년이 지나서 하는 고민이나 또이또이라는 말입니다.

 

에피쿠로스가 행복을 위한 조건으로 내걸은 세 가지가 있는데

 

1. 친구

2. 자유

3. 사색

 

입니다.

 

" 돈이 썩어지게 많은데 친구도 없고, 자유도 없고, 사색도 없으면 우리는 절대 행복할 수 없다. "

라고 했습니다.

 

그 반대의 명제도 역시 성립하겠죠.

 

" 친구가 있고, 자유가 있고, 사색이 있다면 우리는 돈이 썩어지게 많을 필요가 없다. "

입니다.

 

그러면서도 최소한의 인간 본능적인 쾌락은 고통에 젖지 않을 만큼만 채워주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상들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모여살던 곳이 에피쿠로스의 정원(Garden) 입니다.

 

에피쿠로스는 고통에 젖지 않을 만큼의 최소한의 쾌락이 채워져서 마음이 고요한 상태를

아타락시아(Ataraxia)라고 정의했습니다.

 

정원에서는 아타락시아로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판단한, 또는, 에피쿠로스 사상의 주입으로 내려진 [규율]이 꼭 필요합니다.

 

제가 감히 확언하건데,

 

자본주의 레이스에서 ㅈ빠지게 서류가방들고 뛰어가는 비즈니스맨 1 보다

에피쿠로스의 정원에서 감자밭을 ㅈ빠지게 경작하는 농부 1 이 훨씬 행복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런데 에피쿠로스의 정원에서 행복을 위해 정의한 사상들 역시 그 당시에 

시스템을 움직이기 위한 거대한 사상이 되지는 못 했습니다.

 

왜?

 

당연하죠 ㅋㅋ

 

물건을 사야 경제가 도는데, 지들끼리 그냥 감자파먹고 물길어다 먹고 이러고 자빠져있으면

경제가 돌까요 안돌까요?

 

졸라 안돌죠.

 

행복도는 최상이겠죠. 그들끼리 비교할거라고는 같은 언어를 공유함 같은 것들일테죠.

 

" 음~ 너는 나랑 같은 언어를 쓰는구나. 우리는 서로의 사색을 주고 받을 수 있어. "

 

이런 비교들이 있었겠습니다.

 

에피쿠로스의 정원에서는 사치 또한 당연히 멀리 해야할 가치였겠습니다.

 

존1나 쌕끈빡끈한 차돌박이 1000만원 vs. 널려있는 공짜 감자나부랭이

했을 때, 같은 사상아래에서 모두가 널려있는 공짜 감자 나부랭이를 선택한다면,

 

존1나 쌕끈빡끈한 차돌박이에 붙은 1000만원이라는 가치는 0원이랑 같다는 말이니까요.

 

이해되시죠?

 

만약에 에피쿠로스의 가든이 세계에 지배적인 시스템이 되었다면 어떨까요?

 

사람들은 지금 보다 훨씬 게으르고, 훨씬 행복하겠죠.

 

기술의 발전으로 기업이 있을테고, 그 기업에 필요한 막대한 노동력이 모자랐을 것 입니다.

 

산업의 발전은 있으나 그 산업으로 인한 혁명이 이루어지긴 어려웠겠습니다.

 

저는 요즘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발달된 세상에서..

 

진짜 개 쌉이기적으로 나만 졸라 행복하면 그만이라고 가정했을 때,

 

내가 남들한테 피해안끼치고, 도덕윤리적인 규율을 잘 지켜서,

 

나만의 '에피쿠로스의 정원' 을 만든다면 어떨까?

 

나하나쯤이야 괜찮잖아? 이 세상에 어차피 자본주의로 모두가 경쟁을 하고 힘든데

 

나하나쯤 거기서 나와서 인간답게 썩어지게 행복하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들을 합니다.

 

그러다가 저는 이런 결론을 내렸죠.

 

" 현대의 엄청난 과학문명의 이기를 누리기 위해 불려나갈 투자자본 한덩어리와

그리고 졸라 게으르고 행복한 나와 가족, 친구들이 에피쿠로스의 정원에서 살다가 죽는다면

그 삶의 끝에서 나는 하나도 후회할게 없는 삶이겠다. "

 

그러나 나만의 규율로 구성된 나만의 정원도 식구들이 늘다보면

하나의 관리해야할 시스템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스템안에 인원들이 소동을 내다보면 역시 인간성 문제가 대두되며 파멸할 것 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정상적인 존재로 행복하게 묶어두기 위한 신념을 억지로라도 넣을 필요가 있어서

필요에 의해 발생했던게 종교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매한 사람들에게 꼭 지켜야할 십계명이나 반야심경 같은 것들을 같은 이념을 인간으로서가 아닌,

전지전능한 심의 힘을 빌어서 잘못된 가치를 쫓아가는 사람들에게

 

" 제발 행복하게 살기위해서 이 종교에서 전하는 말씀을 제발 제발 제발 듣도록해라.."

 

라는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종교는 결국에 들어가서 살펴보면 모두 동일한 이야기를 합니다.

 

인내천같은 얘기말입니다.

 

" 니가 믿는 니 종교의 너의 신이 하신 말씀이 곧 너이게 하고 그렇게 살아라 "

 

이런 말을 다 똑같이 하는 것이겠죠.

 

그래서 덜 소유하고 더 존재하는 것 입니다.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행복할 수 있도록,

내가 소유에서 멀어지자 내 존재가 더 충만해진다는 명제하에,

 

내가 쓰잘메기 없는 사치에서 멀어지니 필요했던 건 페람포(페라리, 람보르기니, 포르쉐)가 아니라

나의 우월감을 채우기 위한 사람들의 관심이었구나...

 

그렇다면 내 우월감을 채우기 위한 사람들의 관심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페람포가 아니라

페람포는 수단이었구나.. 

 

이런 것들을 깨닳아가는 과정들이 자기계발이 되는 것이겠죠..

 

그렇게 스스로를 알아가다 보면 거뜬히 알죠..

 

나에게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에서 엄청난 자본이 아니었구나...

 

나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공부와 같은 자기계발이었구나...

 

모든 존재가 저마다 빛이나며, 세살짜리 아이에게도 배울점이 있다면,

나는 마땅히 겸손할 것이고, 마땅히 자신감 또한 넘칠 것 이다.

그러면 우월감이라는게 얼마나 보잘 것 없는 허상이었는가 또한 알게될 것이다.

 

이런 것들을 알아가면 포람페, 막대한자본, 불안감, 우울감 같은 것들을 굳이 느껴야할 필요가 있을까요?

 

하지만 이 세상은 당신이 그렇게 되길 희망하지 않습니다.

 

당장 인스타만 켜도 광고가 덕지덕지 붙어 소비를 종용하거든요.

 

포탈사이트 열면 왜 광고가 덕지덕지 붙고, 스폰서가 붙습니까..

 

당신이 보는 축구경기, 야구경기, 유튜브 등 모든 곳에 광고가 붙어서 당신의 소비를 부추깁니다.

 

그래야 경제가 돌고, 자본주의가 이쁘게 활성화돼서 잘 굴러가니까요.

 

저는 자본주의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 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싸가지없고 약삭빠르게 지만좋으려고 자본주의를 현명하게 이용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도 나의 무엇을 사달라고 할 마음도 없습니다.

 

기원전 300년이나, 기원후 2000년이나 어차피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걸 알게 된 나는 이 체제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보다는

이 체제에 순응해서 역이용할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심산에 이롭겠구나.

 

라고 판단한 것이죠.

 

그래 그러면 하기싫은 일 억지로 하면서 스트레스 받을 바에는

그냥 굴릴 자산이나 몇푼 든든하게 쟁여두고,

최소한의 쾌락만 채우고, 나머지는 나 답게 살기위한 시간으로 채울련다~

다만, 가만히 있으면 심심하니까.. 나라는 사람의 자아성취를 위해 하고싶은 일을 쪼끔 하면서 살련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살고있습니다.

 

모두가 그런 의식의 흐름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면서

진정으로 싸가지 없게 자본주의의 수혜를 누린다면

자본주의도 별 탈 없이 아름답게 굴러갈... 까요...?

 

그것은 불가능하겠네요.

 

이상적인 자본주의 역시 인간에게 인간성이 있기 때문에 불가할 것 입니다ㅎㅎ

 

사치품( 사는데 하등 쓸모없는 값비싼 제품 )을 파는 사람은

결국 마케팅으로 바보들의 눈을 멀게 하려고 애쓸테니까요.

 

그리고 그게될거였으면 진작에 됐겠지...

 

싶은 마음에.. 그래도 제가 드린 말씀들을 이해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그런 사람들이라도 조금 더 행복한 사색을 즐기면 어떨까.. 라는 생각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