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nzd6 : 뉴질랜드 농장 우프의 현실

덜소유구도자 2016. 8. 29. 15:46


이 글은 내가 겪은 아주 성기같은 경험에 대하여 적는 글이므로

다수의 독자들이 겪었거나 겪을 수 있는 상황과는 아주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나는 Dunedin에서 이 시골내음 가득한 Clinton으로 intercity버스를 타고 달려왔다.

오클랜드와 더니든을 거쳐 이 깡촌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이지 바로 여기다 싶었다.

눈건강에 좋은 샛노란 초원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고

공기에는 습기가 가득하면서도 상쾌한 향기가 스며있었다.

나의 8kg짜리 조그만 캐리어를 드르륵 끌며 진흙을 밟으며 농장 아저씨가 알려준 좌표로 갔고

아래와 같이 채소가 담긴 박스를 볼 수 있었다.

< 닭이 쎄벼먹으려고 눈치보고있다 >


그리고 내가 지낼 곳을 보여준다며 우리는 이곳을 station이라고 부른다며,

보여줬다. 그리고는 이 곳에 짐을 풀라고 하셨다. 키위아저씨가.

그런데 나는 이곳을 처음보고는 경악을 금치못해서 말도 안나오는 지경에 이르렀고

키위 농장주가 옆에서 뭐라고 떠드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yeah yeah만 연발했다.

키위 아저씨는 잠시후 어디론가 사라졌고 이 방에는 나혼자 남겨졌다.

그리고 주위를 쭉 둘러봤는데 뭐라고 말을 할 수 없는 그런 성기같은 기분을 느꼈다.



< 예예를 연발하던 나의 침대 앞 >

< 침대 위에 올라가서 찍은 스테이션(생활관)의 전경 >

< 피곤해서 누우려고 했지만 그 생각을 싹사라지게 한 배게 >



사진으로 모두 표현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그냥 충격과 공포가 가득했다.

벽 여기저기에는 각국의 여러가지 언어로 이곳 생활에 대하여 적은 글들 또는 생존일기 같은게 보였다.

그리고 정신이상자들이 그린것만 같은 그림들로 가득했다.

흡사 폐쇄된 곤지암 정신병원에 그려져 있을 법한 그림들이었다.


이후에 이곳에 이주전에 왔던 브라질 출신 존잘러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미국인 남자가 들어왔다.

나에게 반갑다고 인사를 했고, 나는 '미친놈들아 여기 어떻게 사냐?' 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응 나도 만나서 반가워 ^^* " 라며 거짓된 인사를 했다.

그러나 브라질 친구가 별거아니라는 듯이 " 이 곳이 어떤 것 같니?ㅎㅎ " 라고 물어봤고

나는 그제서야 솔직하게 " 존나 끔ㅋ찍ㅋ " 이라고 했다.

브라질 친구는 우리는 이곳을 '인터스텔라'라고 부른다며 허허실실 웃어넘겼다.


양놈들은 정말 유쾌하구나.. 라고 생각하며 너무나 피곤해서 자려고 침대에 올라가서 누우려고 했지만

(솔직히 올라가는거 자체도 여러번 망설였다)

배게가 흙투성이 + 땀쩔은자국 + 각질 + 진드기 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너무나 미개하고 더럽고 어이가 없어서 이건 현실이 아니다 라고 부정했고

차라리 인터스텔라 속의 한장면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너무 티를내면 이곳에서 밥먹고 일하고 뒹구는 놈들에게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애써 침착한 척하며 배게를 손으로 대충털고 후드를 뒤집어 쓰고 누웠다.

정말 맨정신에는 절대 누울 수 없고,, 피곤함에 정신이 너무 몽롱해서 머리만 기대면 잘수있겠다 싶으니

그 당시에는 별생각없이 잠을 잘 수가 있더라..



그렇게 자고 일어나려고 하는데 너무 힘들었다.

꿈속에서 깨어났지만 또 꿈속이고 또 깨어났지만 꿈속인 인셉션을 경험했고

진짜 현실에서 깨어날 때는 숨이 넘어갈 듯한 호흡을 거칠게 내뱉으며 "끄헑!!" 하고 일어났다.

주변은 칠흙같이 어두웠고,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니 나는 냉동창고에서 얼어 죽었거나 

아니면 이생을 마감했거나 둘중하나구나 싶더라.. 아멘.


부랴부랴 캐리어를 뒤져서 가져온 상의들을 몽땅 끄집어 입고

침대위에 있는 블랭킷쪼가리 하나를 덮었다.

그래도 너무 춥고 꾸덕꾸덕입은 옷 틈 사이로 우풍이 들어 당최 잠을 잘 수 없었다.

여기가 뉴질랜드인지 캐나다 북녘 땅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존나 추웠다.

이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나중에 뉴질랜드 추위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우숩게 생각하고 큰 화를 당했을지도..


여러번 뒤척이다 어렵사리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 최적의 포지션을 찾아낸 후

묘한 성취감 따위를 느끼는 자신에 대한 한심함을 느끼고 잠이 들었다.

이제 막 잠이들었다 라고 생각되던 참에 인터스텔라 원주민들이 나를 깨웠다. 일을 갈 시간이라고 한다.


나라잃은 김구표정을 지으며 깨어났을 것이지만 원주민들은 나에게 굿모닝!! 이라며 밝게 인사를 했고

씨발새끼들아 굿모닝이겠냐 도대체 여기에 어떻게 사는거냐? 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굿모닝!! ^^* 이라며 또 거짓된 인사를 했다.


그 후 5시간 정도 감자도 아닌 당근도 아닌 그런 식물을 추운 바깥에서 덜덜 떨며 한국어로 욕을 해가며

쉼없이 캐내다가 땀과 비와 진흙창 범벅이 되어 다시 스테이션으로 돌아왔다.


그제서야 여기 침대가, 배게가 왜 이렇게 더러운지 깨달았다.

일을 하고 돌아오면 샤워고 나발이고 심지어 옷도 갈아입을 수 없이 피곤해서 무조건

침대로 돌격해서 잠을 청할 수 밖에 없다.


그 날밤 서양인 친구들이 쇼파에 앉아서 천장에 메달린 조그만 티비에 노트북을 연결해

반지의 제왕을 보며 뉴질랜드의 호비튼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을 무렵

나는 홀로 2층 침대에 누워 탈주루트를 짜기 시작했다.

쇼생크 탈출의 명장면을 끊임없이 되뇌이며 나는 이곳을 기필코 탈출하리라 굳은 결심을 했다.


다음날 아침 농장주아저씨와 친구들에게 몸상태가 좋지 않다고 구라를 친 후

밖에서 3G신호가 아니 G라는 신호가 어렵사리 터지는 스팟을 찾아냈고, (깡촌이었음)

인터시티 버스 사이트에 겨우겨우 들어가서 내일 아침 10시 버스로 어렵사리 티케팅에 성공했다.

이 순간에는 정말이지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라는 말을 되새기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우주정거장으로 돌아왔다.


잠시후 오후 5시께에 친구들이 컴백해서 빵한쪼가리라도 먹을래 한국인 친구? 라고 했지만

나는 너무 아파서 샤워좀 하고 쉬어야 겠어. 라고 말하고는

방한켠에 위치한 나의 캐리어와 옷가지 그리고 노트북가방까지 챙겨서 샤워실로 돌격하려고 했다.

그 때 프랑스 친구가 나를 불러세우더니

" 초록후드친구야 지금 샤워하러 가는거 맞니? " 라며 발길을 붙잡았다.



나는 오줌싼 이불을 들고 화장실로 향하다가 엄마한테 들킨 초등학생 마냥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아 이 가방들 안에 나의 옷가지와 샤워용품이 들어있어! "

라며 평소와 달리 엄청나게 유창하고 막힘없는 영어를 구사했다.

그러자 프랑스인 친구는 "하하 그래 다녀와" 라고 이야기했고 나를 향한 6명의 시선은 분산되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샤워장에가서 뜨거운물도 안나와서 그 한겨울에 찬물로 샤워를 하며

씨foot!! c발!! 을 외치며 샤워를 했다. 아마 군대에서도 이딴식으로 가차없는 찬물로 씼어본적이 없다.

그래도 탈출의 그 순간을 생각하며 꿋꿋이 샤워를 해냈다.

덜덜 떨면서 몸을 말리고 샤워실 앞에 나의 짐을 모조리 쟁여두었다.


샤워를 하고 인터스텔라 정거장으로 들어가자 친구들은 또 반지의 제왕을 단체관람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여기 뜨거운물이 안나오니?" 라고 물어보니

" 그딴거없다. " 라고 대답을 하더라.

난 다시 침대위에 올라가서 내일 아침 도주계획을 점검하며 잠이 들었다.



친구들은 8시 30분정도에 기상한다는 것을 사흘간의 경험으로 알고있었고,

친구들이 깨어나지 않게 철저히 나만 들을 수 있는 정도의 볼륨으로 알람을 8시에 맞춰놓았다.

알람을 듣고 깨어났을 때는 8시였고 역시나 주변은 인기척없이 조용했다.

나는 블랭킷을 조용히 옆으로 걷어 치우며, 삐그덕 소리가 나지않게 2층침대에서 사뿐히 쩜프를 했다.

그러나 사뿐히는 내 머리속에서나 가능한것이었고 점프 후 한바퀴 구르며 난로를 발로 찼다.

그 소리에 같은 방에서 자던 프랑스인 두명이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신발을 주섬주섬 신은 후 밖으로 나와서 재빨리 샤워실 앞에 뛰어갔다.

역시 간밤에 나의 짐들은 멀쩡히 모두 그곳에 있었고, 

노트북 가방을 등에메고, 캐리어가방을 번쩍앉고 미친듯이 뛰었다.


농장을 반정도 벗어났다고 생각했을 무렵

뒤에서 키위아저씨가 헤이!! 헤이!! 하며 존나 급하게 나를 불러재꼈다.

아저씨가 당황+분노한 얼굴로 나를 열심히 쫓아오고 있었고,

나는 잰걸음으로 계속 발길을 옮겼다.

아저씨가 당장 멈추라고 했지만 멈추라고 멈추는 바보가 어디있겠나ㅋㅋㅋ


하지만 나는 바보라서 멈췄고 아저씨가 일로오라고 해서

캐리어를 껴앉고 아저씨한테 갔다.


아저씨가 어디가냐고 물어봤고 

나는 준비가 덜 된것 같다. 라고 했다.

그런데 아저씨가 울먹울먹 거리면서

안녕이란 말도 없이 그렇게 갈수 있냐며 화를 내셨다.

나는 연신 쏘리를 연발했다.

아저씨는 쎄이굿바이도 없이 가냐고 여러번 질책하더니 fuck off라며 돌아갔다.


사실 내가 영어로 자기표현을 할 수 있었다면 이딴식의 무례한 탈출기는 애초에 없었을 꺼고,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이 농장의 환경과 인터스텔라 우주 정거장이 싫었던 것 뿐인데

농장주는 그렇다 치고 나에게 잘해주던 외국인 친구들에게도 싸가지 없게 와버려서 너무나 미안했다.


그렇게 농장을 벗어나는 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탈출성공!! 이런 유쾌한 기분보다는

농장주 아저씨가 마지막에 한 fuck off가 무슨욕일까? 가 계속 궁금했다.

미안한건 버스타고나서야 미안해지더라.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wwoof체험기는 여기까지다.


요즘 한국에서 알바 고용주를 엿먹이는 알바 추노가 유행이라고 하는데 그런 류이다ㅋㅋ


그후로 시간이 지나서 그 농장에서 같이 생활하던 프랑스인 두명을 

다른 도시에서 만나 웃으며 안부를 물었던 적이 있다ㅋㅋㅋㅋㅋ

이억만리 이국땅에 이렇게 넓은 뉴질랜드에서도 세상 참 좁다라는 생각을 했다ㅋㅋ


무튼 이 사건이 있은 후로는 싸가지 없게 추노할 수 있는 상황들을 기탄하고 

항상 정중히 말씀을 드리고 떠나거나 관두든가 한다.

간다고 해서 잡는 사람없고, 다만 아쉬워 해주고 행운을 빌어주고 기분좋은 안녕을 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