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인 생각

경제적 자유와 덜소유의 차이

덜소유구도자 2022. 10. 11. 12:47

 

해당 내용에 대한 답글을 길게 적어드렸으나 이전글로 대체하고,

 

길게 적어드렸던 내용을 확실하게 적어 말씀을 드리는 편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을까 하여 한 번 차이점을 정리해드리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 더 많은 미래현금흐름과 자산증식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구상하는 것이 덜소유 더존재의 철학과 모순되고 상반된다."

 

라는 말씀에 대한 답변을 드리기에 앞서 용어를 정의하겠습니다.

 

덜소유는 소유욕을 최대한 덜어내는 '과정' 입니다.

무소유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상태' 입니다.

풀소유는 모든 것을 소유한 '상태' 입니다.

욕심은 분에 넘치게 무언가를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 입니다.

 

미래 현금 흐름과 자산 증식에 대해 고려하는 것은 소유욕을 최대한 덜어내는 과정과 모순되고 상반된다고 하시는 말씀은

 

자본주의 생태계에서 인간이 존재하는 것을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이는 것을 베이스로

 

그 환경에서 적응하고 생존에 대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을 욕심이라고 지칭하는 것과 같습니다.

 

쇠똥구리는 돈을 위해 똥을 굴리지 않고

 

자손번식과 의식주를 위해 똥을 굴려나갑니다.

 

이런 쇠똥구리의 이기적인 생존본능의 반사이익으로 버려진 똥이 정리되고

 

모아진 똥에서 미생물이 번식하며 식물이자라고 자연 생태계가 활성화됩니다.

 

 

쇠똥구리를 인간에 빗대면

 

인간은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고

 

자손번식과 의식주를 위해 돈을 법니다.

 

이런 인간의 이기적인 생존본능의 반사이익으로 경제활동이 발생되고

 

굴러간 돈의 흐름에서 경제가 자라고 자본주의 생태계가 활성화됩니다.

 

 

쇠똥구리가 태어나보니 똥을 굴려 먹고살 팔자이고

 

자기는 똥을 굴리고 자손번식을 하는 것이 존재의 의의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보니 자본주의 이고 제국주의,공산주의 등의 이념이 대부분 소멸했습니다.

 

역사를 훑어보니 다시 올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럼 무엇을 해야할까요?

 

자본주의에서 생존해야죠.

 

 

다음 쇠똥구리의 욕심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어떤 욕심많은 쇠똥구리가 근방의 모든 똥을 혼자 다 굴리고

 

그 어떤 쇠똥구리도 발을 대지 못하게 한다면,

 

즈그 자손들만 대대손손 부귀영똥을 누리고 나머지 쇠똥구리야 뒤지든 말든 에라 모르겠다.

 

이것은 욕심입니다.

 

 

열심히 똥을 굴리는 쇠똥구리1286번은 무념무상으로 똥을 굴리다보니 어느순간!!

 

헉??!! 똥이 이렇게나 많이 모아졌다닛??!!

 

이 똥이 없어서 곤란한 쇠똥구리를 위해 내 똥을 나눠줘야겠다.

 

이런 의식의 흐름이 공생입니다.

 

 

하지만 쇠똥구리가 나머지 종을 위해 쇠똥을 나누어주다보니 지가 먹을게 없어서 죽었습니다.

 

이건 이타주의의 멸망입니다.

 

 

저의 철학은 아래와 같습니다.

 

인간은 어차피 이기적이고,

 

나는 나로 이땅에 태어나 나로 살다가 나로 죽겠다.

 

그래야 내가 행복하겠다.

 

나로 존재하고 나로 살고 내가 사랑하고 내가 사랑받고 내가 나누고 내가 나눔받아야 행복하겠다.

 

라는 입장입니다.

 

 

 

이에,

 

한 개인이 어떻게 하면 한발자국 굴릴 때 조금이라도 더 똥을 잘붙게 할 수 있을까? 라고 궁리하는 것이

 

돈으로부터의 해방, 경제적인 자유를 논할정도로 위대하지 않으며

 

그 기준 또한 개인마다 상대적이고,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욕심을 내거나 소유하지도 않았기에 풀소유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든 것을 가지지 않겠다는 무소유도 아닌 것이 중립이고,

 

여기서 내가 더 가진 것을 덜어내고, 점점 내가 가진다는 개념(to have), 가졌다는 개념을 덜어내는 것이 덜소유입니다.

 

 

이상적인 개념은 아래와 같습니다.

 

"무소유하고, 완전존재한다."

 

그러나 닿을 수 없습니다.

 

체화하여 반증할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 생태계에서 떨어져 나와 종교인 같은 삶을 살아야하는데 스님도 세금을 냅니다.

 

하물며 생활을 위한 지하수를 내돈으로 내가파서 쓰더라도 나라에 신고를 하고 허가를 받고 돈을 내야합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생태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간인 이상 모두가 돈이라는 한길만 보고 소모적으로 삶을 살아간다"

 

는 논제에 갇히면

 

내가 가질 수 밖에 없고, 내가 가져야하고, 생존을 명분으로 더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덜어낼 수 있기 때문에 덜 소유하고 더 존재하자는 말이 빛이 나는 것 입니다.

 

 

모두 그렇게 살지 않음을 인정하고,

 

모두가 나 같지 않음을 인정하고,

 

병신이 있기에 천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열성이 있기에 우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개발도상국이 있으면 선진국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만 행복도가 경제시장의 규모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인생의 목표를 다시 설정해야 합니다.

 

 

저는 돈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돈은 잠시 누리기 위한 흐름일 뿐이고,

 

돈을 위해 살았더니 돈이 많이 모였습니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 입니다.

 

 

많은 돈이 많은 안정과 많은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말씀대로 중위소득 자본규모로 따지면 동년배는 물론 그 위에 위세대까지 씹어먹을 정도로 압살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인 규모로 보아도 상위 10%에 있는 자본규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글쓰는 본인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알고 있습니다.

 

돈은 그냥 돈입니다.

 

내가 뒤져서도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살아있다고 계속 손에 쥐고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의사선택을 할 수 있는 지금에 와서 그렇게 하지 못해서 얻은 성찰이 바로

 

 

덜 소유 하고 더 존재 하는 것 입니다.

 

 

내가 자본시장에 투자해서 100억이 있고 1000억을 달성해서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고, 자본주의로 부터 해방되었다고 하면 내 삶이 달라질까요?

 

저는 확답할 수 있습니다.

 

 

똑같이 1300만원 짜리 중고차 타고, 똑같이 애보고, 똑같은 친구들보고 늘 그렇게 살겁니다.

 

굳이 불필요하게 더 비싼거, 더 좋은거 지출하지 않고, 지금처럼 가성비 가성비 졸라 따지면서 피곤하게 살겠죠.

 

다만 집주인이 갑자기 전세금 4천만원 올려달래서 전전긍긍하는 친구에게 쾌척할 수 있어서 행복하겠네요.

 

" 마 가져가고 나중에 성공해서 갚아라. "

 

그러면 그 친구는 감사해 할 것이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름 가치있는 소비를 했다.

 

라고 생각하겠죠.

 

단지 돈이 내 통장에 내 명의로 내 존재 앞에 한시적으로 귀속되어 있을 뿐이고,

 

나는 이것을 나누고 공유하고 사랑하기 위해 계속 방출할 것 입니다.

 

이 방향은 계속 내가 아닌 밖으로 향할 것이고 지역사회는 물론 내 나라, 내 주변국가, 범지구적으로 퍼져나가겠죠.

 

이런 인간이 나 뿐만이 아니라 같은 신념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다면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겠죠.

 

그럼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더 행복하고, 이런 선순환을 위한 이데올로기입니다.

 

 

일정수준 이상의 인컴은 그냥 인컴일뿐

 

인간의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인간 생태계는 자본주의 이상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 것 또한 인정해야하고,

 

우리는 절제하고 규칙을 만들고 사랑하고 나누고 행복해야합니다.

 

덜 소유하고 더 존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