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목수 때려치고 월 천만원 벌게된 과정

덜소유구도자 2020. 9. 16. 01:49

 

인증

일단 인증먼저 하는게 인지상정이라 인증하고 간다.

9월 판매자 등급이라고 나오지만 3달간(6월+7월+8월)의 판매건과 금액을 합산한 것이 표시된다.

 

사업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매출이 1억이어도 순수익은 100만원일 수 있다.

마진을 따진 순수익이 중요한데..

나같은 경우에는 마진이 높고 손이 많이 가는 제품을 판매하고 있어서 매출금액 대비 순수익이 높다.

작년 1월부터 목수일(낮춰부르는 말은 노가다)을 하면서 겸업으로 시작했다.

 

처음 쇼핑몰에 바람을 넣은건 심형인데..

목수일 하면서 일당 15만원 정도 벌던 때의 일이다.

 

그 때 당시 대출금을 싸그리 긁어 모아서 목수일로 새출발을 준비하며 당차게 출사표를 내던진 똥반장이 있었는데

그 분은 가구 목수 출신이라 현장 일에는 그다지 능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똥반장은 나이가 어느정도 있고, 여러 직종에 실무 경험이 많았던 심형과 함께

힘을 합쳐서 사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현장일 특성상 어느정도 평수가 넘어가면 일손이 딸리기 시작하는데

그 때, 일이 없어서 놀고있던 나에게 심형은 컨택을 했고,

나는 황금빛 미래를 그려준 심형의 말을 듣고 그 똥반장의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하지만 황금빛 미래는 오지 않았다.

내가 추노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버텼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유는 후술함.

 

아무튼 당시 나는 목수일을 2년정도 했을 때 였고,

인테리어목수 1년, 가구 6개월, 목조주택 3개월 정도 했던 것 같다.

자세한 경력사항은 이전 글을 참고해보길 바란다.

지금 말하면서도 몇년이나 목수일을 했는지 잘 기억이 안난다.

뭐든지 과정은 피드백이고 결론이 나오기 전의 밑바탕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경력사항에 대해 섬세하지 못하다.

 

아무튼 어쩌구저쩌구 해서 그 들과 함께 목수일을 하러갔는데..

오래돼서 천장에 눌러붙은 성기같은 방염자재를 그지같은 헤라와 끌로 긁어내며

말 그대로 노가다를 하고 있었다.

 

이 작업은 대략 3일정도 이어갔는데.. 줏같은 작업이 끝나고 나서

인테리어 실장과 똥반장, 심형 그리고 나 이렇게 총 4명이서 막창집에 갔다.

 

나는 일하는 사람과의 술자리를 극도로 싫어하는데 심형이 사회생활이라는게

처음 술자리는 술을 빼더라도 참석하는게 좋다고 해서 줏같은 마음을 애써 달래며

'그래 잠깐만 버티다 오자.' 라고 다짐하며 따라갔지만 그자리는 도무지 씨팔 끝날 기미가 안보였다.

 

똥반장의 주절주절 술주정과

인테리어 실장의 똥꼬빨이

그리고 심형의 똥반장 달래주기가

 

삼위일체로 다가와 삼절필살기를 날리던 그 사건의 처참한 현장을 생각하면 아직도 자다가 경기를 일으킬 정도.

 

성격상 하기싫은 건 진짜 뒤지게 하기 싫어해서 억지로 착석해 있던 그 땀내나는 남정네들의 숫컷향기가 가득한

의리다지기 술자리에서 나는 도무지가 나이차이가 10살 넘게 차이나는 그 형님들의 이야기가

독약을 마시기 전의 줄리엣을 빙의하게 했고,

드럽게 재미없던 자리를 피해 화장실을 갔다가, 담배를 피웠다가를 반복하기를 수십번..

차라리 이 독약을 먹고 뒤지고 싶다라고 생각할 때 쯤..

그 자리는 똥반장의 만취로 끝이보이기 시작했고

줏같음에 젖어 외로이 쌈배연기나 뿜어대던 내 옆에 심형이 다가와 자신의 야망썰을 풀기 시작했다.

 

심형은 네이버에서 쇼핑몰을 부업으로 하고있다고 말했고 나는 처음 그이야기를 들었다.

 

"형.. 쇼핑몰 할려면 창고가 있어야 되는거 아닌교? 그리고 그게 일하면서 겸업이 됨??"

 

하니 심형은 "훗, 방법이 다있음"

이라고 얘기했다.

 

이에 나는 "헐 어떻게 하는 것인교?" 하니

심형은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감"

 

심형은 이야기의 끝에 자기 친구는 변호사고 무슨무슨사고 어마어마한 직종에 몸을 담고 있다며

그들에 비하면 자신의 수익은 한없이 보잘 것이 없다고 했다.

 

당시 내 친구들은 깡통차는 백수, 등골 브레이커, 여긴어디 나는 누구 등등

하루하루 밥이나 축내는 식충이들이 가득했고, 옛말에 유유상종이라고 하였거늘

정상적으로 일을 하는 나님은 프라이드를 가질 수 밖에 없었기에

' 그래.. 와따시 정도면 삶을 제법 가치있게 사는것일지도..? '

라며 애써 자위를 하고 있었다. (그 자위 말고)

 

그런 나에게 심형의 이야기는 삶과 주변인물을 되돌아 보게 하였고,

저만치 보이던 만취한 똥반장은 허공에 팔을 휘적거리며 도무지 집에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꼰대질과 인성질이 심화되던 똥반장에게 마침내 심형은 언성을 높이며 하극상을 하였고,

찌질하게 눈물을 글썽이며 미안해 하던 똥반장은 사내의 가오를 잃었다.

 

더 이상 이 혼돈의 쓰나미에 견딜 수 없었던 나는 일당 15만원 짜리 목수에게 월 180이라는

급여를 지불하며 근본도 없는 xiang노가다를 시키던 똥반장의 곁을 떠나기 위해

대가리 수술을 해야한다는 말도안되는 구라로 현장을 탈주했다.

 

몇개월이 지나

 

심형에게 연락이 닿아 똥반장의 근황을 물어보니 대충 과로해서 병원에 실려가더니 재기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

그럼 그렇지.. 라며 집에서 할 일 없이 유튜브나 감상하던 나에게 그의 동영상이 나타났다.

 

 

그들은 말그대로 나같이 근본도 없는 놈들이

' 뭐야.. 어쩌면 나도 가능할지도..? '

라는 자신감을 가지게 하였고, 나는 동작세무서에 가서 제법 가볍게 사업자라는 것을 내버리고 말았다.

 

메이플스토리 자유시장에서 공10노목 판매하는 것도 힘겨워 하는 내가 물건을 잘 팔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했지만, 어차피 자본주의에서 자본가가 아니면 내가 가진 것을 파는 게 돈벌이 수단인게 팩트다..

 

그 때 당시 그는 구독자 5000따리 였지만 현재는 대성하여 100만의 구독자와 함께하고있다.

 

이게 되겠냐 라는 생각으로 첫 헌팅에 나가는 찐따쉑의 마음으로 여러가지 준비하여

낚시질을 해봤지만 돌아오는 건 의미없는 매출 백만원이었다. (실수령액 8만원 남짓으로 기억함)

 

그 와중에 일하러 나간 현장에서는 내가 현장에서 만난 사람중에 가장 성기같은 인성을 가진 그 10bird가 있었고,

그는 내가 목수일을 때려치우기에 충분한 명분을 제공해줬다. 씨벌럼.

 

뒤끝없는 내가 아직도 그분을 생각하며 쌍욕을 떠올리게 하는걸 보면 진짜 어마어마하게 그지같긴 했나보다.

 

아무튼 디스크 때문에 일 못하는 나에게 개GR을 떨던 그 분 덕분에 마지막 남은 희망의 끈이 되어버린

쇼핑몰에 몰두하게 되었고,

 

말로는 몰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하루에 4시간 정도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유튜브를 보며 보낸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게 이제 유유상종.

 

태생이 게으른 나는 몇달정도 하루 웬종일 쏟아부어도 도무지 '그 동영상들' 처럼 매출이 나오지 않았기에

다른 길을 찾아볼 수 밖에 없었고, 다시 목수일로 돌아갔지만 허리가 아파서 4시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믿고 있던 룸메이트 마저 월세로 내던 재산을 모두 탕진잼하여 나에게 돈을 빌렸고

그는 일을 구하지 못해 우리는 파산을 맞이했다.

때 마침 돈벌레와 바퀴벌레가 득시글 거리던 반지하방에 비가 준내게 세는 걸 핑계로 집주인에게

클레임을 걸어 방을 빼고, 불명예를 뒤집어쓴 패잔병 맹키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부모님이 거주하시는 홈스윗홈으로 돌아와 굳은 결의를 다지며 이렇게 된거 더 이상 내게 뒤는 없다.

라며 ' 대출이나 준내게 받아서 사입판매(업체에서 물건을 사와서 판매)를 해보자 ' 라는 다짐을 했고,

 

아무 신용도 없는 나에게 국가는 소상공인 지원자금 2천만원을 대출해줬다.

 

이 돈으로 시진핑의 나라에서 특정 물건 하나를 수백개 사와서 내방에다 쌓아가며 판매를 시작했고,

그 달 순수익이 30만원.. 10만원 벌던 내게 20만원의 수익상승은 200%의 수익률 상승인 것이다.

아유 재밌네 쓰펄..

 

씁쓸하게 웃던 나는 약간의 의욕을 상실했는데..

거기에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거대한 큰손이 내 아이템을 더 싸게 들여와서 말도 안되는 가격에 후려치기

시작했고 나는 존망해 버렸다.

 

 

 

힘없는 소상공인은 30만원을 벌 자격도 없는 것인가 라고 생각하며,

안되겠다 저 인간들이 하지 못하는 존나 귀찮은 일을 하면 내 밥그릇을 넘보지 않을 것이다

라는 판단하에 진짜 줒같은 물건을 들여오기 시작했는데,

그게 존내 잘팔림...

 

집에서 쌓아두는게 한계가 올정도로 판매되기 시작했고,

나는 집근처에 30평짜리 창고를 보증금 400에 월세 45만원의 조건으로 얻어

그 아이템을 1000만원어치 들여와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이 2019년 12월말이었다.

 

 

큰손이 들어오기 어려운 존나 귀찮은 물건을 가져와서 팔던 나는 일손이 딸린 나머지

결국 등골 브레이커1에게 연락을 해서 도움을 청했고

등골 브레이커는 그 쉬운 택배포장도 못하고, 술처먹고 안나오고, 같이 보내야되는 물건을 안보내고

GR발광을 떨더니 한 달만에 그 아이템은 별점 1점테러를 맞고 사망해버렸다.

 

친구 탓은 하기 싫지만 도무지 그섀끼탓을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친구에게 미안하지만 제발 꺼져줘.. 라고 부탁했고, 친구는 굉장히 미안해 하며 꺼져주었다.

 

이 때가 2020년 1월이었고 순수익은 208만원, 2월엔 146만원 이었다. 이마저도 친구에게 월급으로 줘서 없음.

 

그 때 코로나가 터졌고,

친동생도 일 자리를 잃었다.

 

이 집안의 장남인 나는 도무지 대가리를 들 수가 없었고,

일단 거기서 뒤지나 여기서 뒤지나 뒤지는 건 마찬가지인 동생을 데릴러 파주에 다녀왔고,

창고의 쪽방에 동생을 대피시켜 브루스타와 냄비, 라면을 넣어주었고..

나는 따뜻한 집에서 엄마가 차려주는 밥 먹었음.

내가 개자석이 아니고 동생이랑 아부지랑 사이가 안좋아서 집에 오기 싫어했다.

 

그렇게 동생과 힘을 합쳐 재기를 노렸고

순수익이 3월 68만원.. 4월 59만원...

 

3월이었나 4월에 코로나로 중지되었던 중국내 물건 생산이 재개되었으나

공동 대표로 사업자를 바꿔서 50대 50으로 동생과 찢어 먹기 시작하자마자 매출이 바닥을 치니

동생은 나에게 "나도 대표인데 왜 형말만 맞냐고 우기냐" 라며 대들었다.

니 말만 맞는게 아니라 시바 내가 1년반을 했는데 니가 잘알겠니 내가 잘알겠니..

 

사실 동생은 고3때 까지 지적장애 3급이었다가 성인이 되면서 복지카드를 반납했다.

대충 관계자들끼리 이 인간은 사람구실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나 보다.

 

그 쪼금 번돈 68만원이랑 59만원으로 라면으로 끼니를 챙겨주던 나에게

동생은 눈깔이 돌아서 말도안되는 개소리로 왕왕짖어대며 내게 개GR을 떨기 시작했고,

나는 부족하지만 전재산을 지 아가리에 털어 넣어줬는데 이딴식으로 대하는 동생에게

인간적인 실망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받았다.

그래도 혈육이니까 남은 빚으로 200에 25월세를 얻어주었고,

그렇게 동생과 통화를 하다말고 받은 상처로 분노에 눈깔이 돌아간 나는

허공에 쌍욕을 30분간 뱉다가 물을 3리터 정도 마시고, 더 이상 내게 가족의 의미를 찾지말라며

부모님마저 뒤로하고 캐리어 짐을 싸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와서 주접떨지말고 나가서 바람좀 쐬고 오라고 요청하였고,

친구들이 술자리에 모여있다는 카톡을 봤던게 떠올라서 당장에 차를 몰고 그 자리로 뛰쳐나갔다.

 

 

 

달려가자마자 후래자 삼배 쏘맥으로 오지게 털어넣고 반쯤 풀린눈으로 친구들에게 하소연 했고,

이를 불쌍히 여긴 정상인1이 내게 도움의 손길을 건내준 덕에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마참내 5월에 358만원, 6월 760만원, 7월 951만원의 순수익을 달성하여

그 오랜기간 동안 알 수 없는 심연속에 있던 나는 현재 월 천만원 이상의 수입을 벌고있다.

 

그러나 시발 지금 나에게 남은건

손절한 동생과 사랑하지 않는 일, 그리고 스스로 만족하는 만큼의 돈이다.

 

부정적으로 말해서 알겠지만, 나는 월 천만원이 결코 달달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전글들에서 썰을 풀었지만, 우리 집안은 단 한 번도 잘 살아본적이 없고,

나는 그저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는 금액이 천만원이라길래

그 돈을 만져봐야 행복이 돈으로 좌지우지 되는지 안되는지 알 수 있지 않을 까 라는 마음에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그냥 차라리 이 돈으로 대출을 모조리 갚아버린 후에

남는 돈은 전부 다 애린원에 기부해버리고 싶은 심정.

 

그 인문철학적인 성찰은 조만간 따로 글을 작성하여 드릅게 재미없게 풀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