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인 생각

이 사회에 대한 고찰

덜소유구도자 2020. 6. 26. 12:02

돌아가는 꼬라지가 목불인견이다.. 내 눈깔을 파고싶을 만큼..

 

눈에 보이는 건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건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믿으면 신뢰한다.
믿지 않으면 의심한다.
생각의 주체는 자신이다.
증거가 쌓이면 확고해진다.
의심이 생기면 오해였길 바란다.
의심이 쌓이면 믿음의 무게만큼은 버틸 수 있다.
계속 합리화하고, 머무를 수 있는 만큼 머무르고 싶어한다.
그런데 한 번 쯤은 생각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부분이 있다.
과연 내가 믿음으로 개기는 동안 이득을 보는 무리는 누구인가?
그 무리는 사회에서 일전한푼 안 받고 무한한 성의를 내려주는가?
누군가가 피땀흘려 성취한 조각중에 일부를 떼내서 불완전한 곳에 뿌려주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그러한 방식에 기꺼이 따를 수 있는가?
이 과정에서 확고한 신앙과 자본을 거머쥐는 사람을 응원하는가?
나의 믿음이 나를 더 병들고 가난한 마음이게 만들지는 않는가?

소유하지 않으려 하는 자의 스스로 종교적인 삶은 몹시 옳다.

허나 그 빵이 어디서 왔는지 의심하지 않고, 빵조각을 여덟등분하여 여덟명이 나눠 당장 배를 채우기만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은 상당히 위험하다.
누군가의 피땀흘린 조각 중 일부를 성은으로 여기는 것과 같이.
하지만 나는 획일화되어 다루기 쉬운 사람들이 가득 차길 원하지 않는다.

개인은 모두 그들의 영웅이어야한다.
각자의 개성이 숨쉬는 천장이 없는 자유로운 경쟁을 바란다.

그곳에선 참된 노동이 생산된다.
노력한 만큼 거머쥘 수 있는 사회는 아니지만, 노력에 배신당하는 사람이 생기진 않기를 바란다.
아쉽게도 자본의 격차가 심하게 벌어지고 점점 양극화된다.
새로운 세계에서 자본가와 노동계층이 새로운 형태로 나눠질지라도 진리에 가까운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경고를 위해서라도 태동해야한다.
돈과 감성팔이로 간단히 다룰 수 있는 존재가 인간으로 표현되지 않길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