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소유 공략집

[특전3] 인간은 제법 보잘것없다

덜소유구도자 2023. 6. 21. 18:12

 

[특전1] 덜소유 풀만족 하는 구체적인 가이드

닥.눈.삼.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는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일련의 규칙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닥눈삼이 아닐까 싶다. 닥.눈.삼. 이란, 닥치고 눈팅 삼일 의 줄임말로 괜히 나대다가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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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랜만에 특전 이어갑니다.
 
인간은 제법 보잘것없다.
 
라는 주제로 인간에 대한 회의감이나 기대에 따른 실망을 제거하는 법으로 출발하여
 
인간관계의 고민을 원천적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마무리 할 것 입니다.
 
이번 내용은 '인간관계' 에 대한 고찰입니다.
 
 
 
왜 인간은 보잘것없을까요? 
 
인간은 거대한 우주에 먼지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우주라는 것은 나의 우주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느끼고 보는 등의 모든 오감은 나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평가, 타인의 행동, 타인의 시선, 타인의 말, 타인의 감정 등
 
외부의 입력 또한 나의 의식을 통해 들어옵니다.
 
누군가 나에게 비방을 했다는 가정을 해봅시다.
 
" 야 임마 너 개 못생겼다? "
 
나의 인식과정은 다음과 같을 수 있습니다.
 
타인을 통한 자극발생 ->
오감으로 인식 ->
부정적 평가로 인한 비교발생 ->
인정욕구발현 ->
액션(빡침, 우울, 무시, 폭행 등)
 
타인은 인간일 수도 있고, 개미일 수도 있고, 개소말이나 자연 등 나를 제외한 둘러싼 모든 외부환경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환경은 통제할 수 없는 변인통제할 수 있는 변인으로 나뉩니다.
 
예를들어, 담배케이스와 강아지가 있다고 쳐봅시다.
 
이중 무엇이 통제가능한 변인이고 통제불가한 변인인가요?
 
담배케이스는 통제가능한 변인입니다. 담배케이스는 사물입니다.
 
강아지는 통제불가한 변인입니다. 강아지는 생명체입니다.
 
강아지가 통제가능하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강아지는 자유의지로 행동하기에 통제불가합니다.
 
이때, 담배케이스가 타인(타자)에게 귀속되어있으면 이는 통제가능하지만 사회적인 약속으로 통제받습니다.
 
법령이나 약속 등으로 소유권이 정해져 있다면 이는 추후 문제 발생의 원인이 되며
나의 통제하에 형태가 변경되거나 이동된 담배케이스를 문제삼은 타인은 점유물이탈횡령으로 소송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사회적인 약속으로 범죄로 지정되지 않은 행동은 모두 해도 될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사회적인 약속은 강제가 될 관련 법령이기도 하지만 인간사에 도덕이나 윤리 등의 상식으로 통하는 길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부녀는 건드리지말자." 같은 것 입니다.
 
혼인빙자간음죄나 간통죄는 과거 사회적으로 강제된 법령이었으나 시민의식이 변화하며
 
강제성이 사라진채 도덕과 윤리만 남은 사상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유부녀는 건드려도 되긴 합니다.
 
다만 뒷 감당은 본인이 해야겠죠.
 
 
 
 

 
성행위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제우스가 여러 유부녀를 탐하고, 뿐만아니라 친남매, 부모 등 오만 관계에서 진행시킵니다.
 
야스를요.
 
일부일처는 그들의 사회에서 강제되지 않은 도덕과 윤리의 영역이며 통제불가능한 변인입니다.
 
만약에 인간사회가 그리스 신들의 사회처럼 내 맘대로 성행위를 해도 되는 사회라면
 
누구든 누구와 해도되겠죠.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하는 겁니다.
 
 
하나의 대중적인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제목은 '귀순이 여친과의 한사바리' 입니다.
 
내가(화자가)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목숨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사랑했습니다.
 
어느날 랄부친구인 귀순이의 여자친구에게 성적인 호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귀순이 몰래 귀순이 여친이랑 야스를 진행시켰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귀순이가 개빡돌아서 나랑 의절을 선언하고, 내 여친한테 이 일을 밀고합니다.
 
이를 인지한 사랑하는 "나의 여자친구" 는 나에게 귀쌰대기 한대 쳐올리고 떠나버렸습니다.
 
하나뿐인 랄부친구 "나의 귀순이" 는 나를 증오해서 영원히 떠나버렸습니다.
 
그리고 성적인 호감으로 단 한 번의 야스를 진행시킨 귀순이의 여자친구는 나와의 궁합이 맞지않다며 떠나버렸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세상에 홀로남겨진 듯한 기분으로 내가 왜그랬을까.. 릿뻘.. 하며 후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여자친구를 잃은 나는 자괴감에 그만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끗.
 
 
상기 이야기는 통제불가능한 변인으로만 이루어져있으며
 
어떤 사회적으로 강제된 법적인 구속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화자는 도덕적인 처벌을 받아버렸고
 
이는 강제된 구속보다 훨씬 거대한 대가를 치루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화자는 왜 회의감을 느꼈을까요?
 
이것은 한 순간의 선택으로 통제가능하다고 착각했던 타인들이 통제불가능한 타인이 되며
가장 아끼던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자기 스스로 조차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소유욕의 무서움입니다 (?)
 
 
화자가 시간을 돌린다면 어디로 갈까요?
 
바로 귀순이 여친을 탐하려던 순간으로 돌아갈 것 입니다.
 
모든 것을 원상복귀 시키고 본인이 본인의지로 여전히 선택권을 소유하고 있을 때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화자를 그 시간대로 돌려놔보겠습니다.
 
성욕에 눈이먼 화자를 후회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1. 근본적인 원인이었던 "화자의 성욕" 을 스스로 통제하는 경우
 
화자는 귀순이의 여친에게 성적인 호감을 느꼈습니다.
 
화자가 귀순이에게 성적인 호감자체를 못느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게이가 되면 되겠습니다.
 
화자가 게이가 되는 길을 선택하면 귀순이 여친에게 성욕을 느끼지 않았을 것 입니다.
 
그렇지 않으면요? 성욕을 느낄 수 없게 스스로 조율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1일 13달을 진행시키며 성욕을 모두 해소시켜서 귀순이 여친을 단지 신의 피조물로 인지되게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무엇을 갖다놓던간에 화자가 자기의식적으로 거부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지 않는 이상
 
엄청난 의식성장수련이 깔리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인간은 이 상태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욕이라는 것은 그저 본능적으로 솟아나는 욕구이기 때문입니다.
 
 
2. 화자에게 미래를 보여줘볼까?
 
과거의 이야기나 전래된 사례, 주변인의 케이스, 드라마나 영화 등을 화자에게 보여주며
 
귀순이의 여친을 탐할 경우 발생되는 여러가지 문제점에 대해 미리 교훈을 삼는 방법입니다.
 
이는 욕구를 통제하지 못함을 인정하고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화자의 본능이 뇌를 굴복시키지 않는 이상,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한다면 막을 수 있습니다.
 
허나 이 방법도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술을 만땅먹고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거나 욕망이 너무 차올라서 어떻게돼도 상관없어!!
 
라는 마인드가 심어져버리면 화자는 여전히 후회의 길에 접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타인(타자)에 의한 통제
 
화자는 자기 스스로 절대 욕망을 찍어누를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자기의식은 자신을 믿을 수 없으니 외부환경을 조절합니다.
 
귀선이에게 이 사실을 고하며 귀선이와 손절을 하고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지키던지
 
귀선이 여자친구가 화자를 소름끼치도록 싫어지게 만들어서 아예 상황자체를 만들지못하게 하던지
 
어떤 방법으로도 귀선이의 여자친구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외부요인을 통제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말씀드렸습니다.
 
자유의지를 지닌 것은 통제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어떠한 모종의 이유를 통해서라도 마치 신의 장난인냥 귀선이의 여자친구와 화자는 다시 그 위기에 놓여질 수 있습니다.
 
 
 
정녕 완벽한 방법이란 없는것일까요?
 
예, 그렇습니다.
 
미연에 방지하고 일어나지 않을 확률을 높이는 것은 가능합니다만 그것이 0.0000001%의 기적적인 확률일지라도
 
가능성이 열려있다면 가능한 경우의 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화자의 욕망의 항아리를 탓하고 싶고 왜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하냐고 나무라고 싶나요?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귀선이도, 귀선이의 여친도, 화자도, 화자의 여자친구도 모두 우리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간이고
 
나도 언제든지 그들의 입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앞에선 한마디도 못하더니 뒤에선 내 얘길 안좋게 해 참 어이가 없는 소리입니다.
 
부정하고 싶다면 화자를 마녀사냥하러 떠나보시죠.
 
 
자 여기 화자가 군중의 비난에 못이겨 극단적인 상황을 결정하게된 순간이 있습니다.
 

화자는 늘어진 파이프를 붙잡고 위태롭게 메달려 있습니다.

 
화자는 너무 억울한 나머지 군중에게 소리칩니다.
 
" 여기서 자신과 약속된 관계의 연인외에 누구에게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던 자가 있다면 내게 돌을던지시오!! "
 
그곳에 배우자와 함께 자리한 몇몇의 인간만이 머뭇거리며 돌을 주워들고 있을뿐
 
군중은 침묵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이토록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마치 나는 이 세상에 모든 부도덕함과 담을 쌓은 정의로 똘똘뭉친 인간 그자체임을 코스프레하며
 
털어서 먼지하나 안 나올 사람이 그 누구도 없을지라는게 세상만고의 이치임에도
 
자신이 마치 요리사의 음식을 평가할 수 있는 비평가라도 된마냥
 
아주 쉽게 누군가를 비난하고 음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에 지나지 않을 뿐, 모두 인간의 의식안에서 발현합니다.
 
살인자의 궤변에도 본인 나름의 사연이 담깁니다.
 
인간 나고 법이 나지, 법이 나고 인간이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보잘 것 없습니다.
 
하물며 나조차도 이렇게 보잘 것 없는데
 
과연 내가 누구보다 그렇게 잘나고 완벽해서 타인에게 기대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요?
 
그렇게 무결한 사람일 수가 있을까요?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미필적고의일지라도요.
 
 
서로가 각자의 입장에서 인간관계에 실망을 하는 이유가 가지각색입니다.
 
* 상대방이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 상대방이 자신을 배신하거나 상처를 준 경우
* 상대방과의 관계가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
* 상대방과의 관계가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
 
그리고 그 상대방을 부정하는 것도 긍정하는 것도 모두 자기 자신의 의식입니다.
 
귀순이가 만약 친구를 백 번 이고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화자는 귀순이와 여전히 랄부친구 일 것이고
 
화자의 여자친구가 백 번 이고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화자의 여자친구와 화자는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요즘 세상엔 관용이 많이 없습니다.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로 저지른 실수일지라도
 
수습할 수 없거나 내가 널 용서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응당 너 또한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으리라
 
라는 의식이 바로 부재된 관용입니다.
 
 
모두가 모두를 백번이고 용서할 수 있는 사회이지 않아서 아쉽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모두가 백번이고 나를 용서할 수 없는 사회라는 것을 내가 나의 의식으로 인정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기대하지마세요.
 
 
애초에 나의 소유도 아니고, 그들도 날 소유할 수 없습니다.
 
내 소유가 아닌 통제할 수 없는 모든 변인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기대와 실망과 만족과 상처들은 모두 나의 것 입니다.
 
단지 그런 것들이 나의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내가 소유한 그것들 조차 일시적인 소유일 뿐, 내가 놓아버리거나 존재하지 않는 때가 되면
 
자연계로 방출되거나 유산으로 상속되어질 것들 입니다.
 
그런 것들 보다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바로 존재하는 이 순간에 오롯이 존재하는 것 입니다.
 
 
내가 존재하는 한 모든 의식은 나와 함께하고 나와 함께 저물어갑니다.
 
그렇기에 덜 소유하고 더 존재하는 것보다 더 좋은 가치를 코노 와따시는 찾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제 의견에 동의하신다면
 
덜 소유하고 더 존재하세요.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