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인 생각

가난을 물려받을 자식에게 미안해서라도 낳지말아야지

덜소유구도자 2023. 6. 8. 01:37

안녕하세요 덜소유구도자 입니다.
 
친구가 가난을 물려받을 자식에게 미안해서 애를 낳지 않겠다 라는 발언을 한 것에
 
큰 충격을 받고 그것은 절대적으로 자의식 과잉 또는 비약이다 라고 설교하고 왔습니다.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과연 그 친구뿐일까 생각해보면
 
절대로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독자분들 주변에도 아직 돈이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관계들이 덮여있을테니까요.
 
 
우선 "가난을 물려받을 자식에게 미안해서라도 낳지 말아야지" 라는 명제에서
 
가난자식 그리고 미안함출산에 대해 정의해야 합니다.
 
이는 소유적 가치가 아닌 존재적 가치로서 얘기합니다.
 
소유적(경제적) 가치로 얘기하기엔 과연 그 이치가 타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방금 말씀드렸던 내용이 핵심이죠.
 
 
 
가장 이상적이고 가장 현실적인 덜소유적 가치관에서
 
가난이란 축복입니다.
 
소유하지 않음은 축복이고, 가지지 않았음에 기쁘고, 가질 과정에 즐겁고, 더 존재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이미 가지지 않아서 더 비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안정적인 상태입니다.
 
 
자식이란 사랑입니다.
 
자식은 유전의 증명이고,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이고, 생명적 존속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아차, 자식이 특이점을 넘어가버린 이후로는 일방적인 무조건도 아니고
 
애새기 하는 꼬라지가 띠꺼워서 나도 한 두 번 고민하고 계산될 수는 있을지언정
 
그들도 다시 그들의 자식을 낳음으로서 그 가치의 소중함을 절반이상 되찾을 기회로 회귀한다면
 
이따금 올바른 부모자식간의 정을 재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불안은 이 부모자식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특이점, 즉 관계에서의 변수이겠지요.
 
 
미안함이란 감정입니다.
 
내가 자식에게 더 주지 못하는 미안함, 내가 더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하는 미안함,
 
원하는 것을 누리게 하지 못하는 미안함, 위계에서의 미안함, 사랑함으로 따르는 미안함,
 
인류애적인 미안함, 고통을 공유하지 못하는 미안함, 또 이런 세상탓아래의 미안함 등이 있습니다.
 
미안함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문제입니다.
 
 
출산이란 영화입니다.
 
영화란 영광과 빛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생명의 탄생이고, 혈연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영화에 의해 세상에 나왔고 그것이 쾌락이든 책임이든 사랑이든간에 상관없이
 
존재할 수 있게됨에 감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그러한 생명은 잉태이후 사라질 기회도 충분했고, 때가아닐 위기도 있었겠지만
 
어찌되었건 어미의 산도를 통해 세상에 뱉어진 순간부터 이미 그 자체로 부모의 영화이고 스스로의 영화입니다.
 
 
 
자,
 
그렇다면 "가난을 물려받을 자식에게 미안해서라도 낳지 말아야지" 라는 명제를
 
제가 다시 정립해드린 기준으로 풀어서 얘기하면
 
"축복을 물려받을 사랑에게 감정문제가 생겨서 영화를 누리게 하지 말아야지" 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축복은 대단히 좋습니다.
 
사랑 역시 그 단어 만으로 충만하죠.
 
영화라는 것 빛나고 영광된 것은 이미 그 자체로 고귀합니다.
 
허나 여기에 감정문제 라는 것.
 
그것 하나가 걸리게 되는 것 입니다.
 
 
결국 가난을 자식에게 물려줌으로 미안하다는 건 전적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문제일 뿐이라는 의역도 가능하게 됩니다.
 
 
그 탓을 돈으로 돌리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희석하며 불안에서 해방되고 싶어하는
 
낮은 자존감 또는 열등의식의 방어기제가 되는 것 입니다.
 
 
자식은 사실 특이점에 맞닿을 때 까지 부모가 개shack낀지 소shack낀지 알도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스톡홀름 증후군의 정점과 같아서
 
태어나서 살다보니 그런 부모밑에서 자라고 있는 것과 같고,
 
그것이 부당하다는 사실과 해방이라는 목적의식을 띄우지 않으면
 
그 불안정하고 참담한 관계는 생명이 다하는 날 까지 지속할 수 있습니다.
 
허나 세상은 이러한 관계를 학대라고 분류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식을 학대하지 않습니다.
 
학대라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낮은 자존감과 열등의식의 폭력적인 발현입니다.
 
미안함을 느끼지 말아라는 말이 아니라 이런 폭력적인 관계를 즈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가진 것이 많다는 것도 좋은 선물일 수 있습니다.
 
단, 그 사이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내 감정문제는 결코 축복도 선물도 될 수 없을 것 입니다.
 
 
어느 날 자식과 와이프와 행복한 나들이 끝에 무심코 찍어보게된 화목한 미소가 담긴 5000원짜리 인생네컷사진과
 
5000만원짜리 금괴의 가치가 어찌 감히 같은 저울위에 동시에 올라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못살던 조선시대에도 분명히 없는 형편에 많은 위인들이 나왔습니다.
 
걸출한 철학자들이 부잣집에서 태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태어나서 죽지않는 생명체는 없습니다.
 
다만, 내 부모가 못나서 방황하는 청년들의 죄는 돈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돈을 빌미로 불완전하게 연소되어버린 관계의 문제이죠.
 
관계란 인간대 인간으로서 나오는 인간관계에서 개인대 개인이 얼마나 불충분한지
 
또는 불온함에 맞서 얼마나 반성하는지, 의식성장을 이뤄내는지에 달린 문제지
 
돈이 사람의 인성을 결정하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영어유치원이나 특목고, 자사고같은 비싸고 경쟁적인 과정에 달린 것이 아닌
 
인간이 인간으로서 얼마나 참되고 진정한가에 달린 문제입니다.
 
또 상당 부분이 유전으로 랜덤하게 정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계유전이 지능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둥,
멍청해서 위인이 될 자격이 없다는 둥이 아닌
위인이 되지 못해서 축복받지 못한 것도 아니겠습니다.
 
 
저 또한 꼴랑 2000만원 들고 결혼해서 자식을 사랑하며 3년만에 많은 재덕을 쌓았습니다.
 
아마 자식이 없었으면 이렇게 뭔가를 이루려고 똥꼬빠지게 동분서주하지도 않았겠죠.
 
자식 또한 좋은 변명거리가 되어주었을 뿐
그저 개인의 맡은 바 소임은 언제나 귀찮지만 열심히 했을 것 입니다.

저는 야심찬 야망가도 아니고 홍길동이나 전우치같은 비범한 인물도 아니니까요.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그렇게 자식을 위해 돈을 잘 모으거나 잘 못모으거나 이딴 문제로 해결되는 일은 사랑과 행복이 아닙니다.
 
소유에 얽메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회고입니다.
 
그렇게 돈을 목표로 돈을 목적으로 돈을 절대적 가치로 쫓아가면 그 끝은 어디있는지 찾아보세요.
 
끝은 나한테 있습니다.

내가 자의든 타의든 내려놓는 순간에 끝납니다.
 
우리는 항상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너는 얼마정도 있으면 충분하겠니? 얼마에 만족하겠니?
 
너는 그 상한선을 어디에 두겠니? 과연 상한선이라는게 목적이 될 수 있겠니?
 
목표한 금액이 달성되면 무슨 꿈을 꾸며 살아가겠니?
 
내 돈이 나를 배신하지 않겠니?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겠니?
 
충만해질 수 있겠니?
 
더 많은 돈과 남들에 비해 더 젊은 나이들이 그 위치가 나를 그토록 잘 대변해줄 수 있겠니?
 
나는 어디에 살고있니?
 
내가 오지않을, 어쩌면 더 일찍 맞이할, 어쩌면 너무 늦어버릴 수단에 얽매여 소중한 가치들을 땅바닥에 버려둔채
 
돌아오지 않을 현재를 무심하게 걸어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보고, 현재에 만족하고 행복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도대체 죽어버린 연애세포와 만족감은
 
얼마를 찍어야 찾아올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이 과연 액수에 달려있는 문제인지
 
늘 점검해보고 의식을 성장시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속을 탐험하다보면 감정문제라는 것이 얼마나 한시적으로 사사로운 문제였던 것인지 알 수 있고,
 
미안하려면 미래의 자식에게 미안하기 보다는 내 부모를 소중히 하지 않던 자식인 나새끼를 먼저 돌아보고
 
과연 내 부모가 돈이 없어서 내가 이렇게 사는가? 라는 물음에
 
아니다.. 이건 그냥 내 인간성의 문제이구나 라며
 
과잉된 자의식의 눈꺼풀을 한 겹 벗어버릴 수 있는 순간이 될 것 입니다.
 
그러나 이 미디어와 세상의 편향들이 무차별하게 돈으로 내 대가리속을 까스라이팅 할 때
 
뻐큐할 수 있는 단단한 의식으로 " 그래 진정한 번영은 자식농사지!! " 당당하게 외치며
 
너무 무자비 하진 않게 스스로의 삶을 행복으로 채울 수 있는 후손번영에 대해
 
진정성있고 심도깊은 고민을 하는 것이 좀 더 옳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밑에 댓글에서 쌍욕을 하시길래 같이 욕을 해드렸는데 운영정책위반이 되었네요.

말귀를 잘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바티칸 어록에서는
'빈곤은 부이고, 무한한 부는 거대한 빈곤이다.'

라고 말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모든 종교가 같은 얘기를 하지만 인간은 쉽게 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노력을 하셔야합니다.

덜 소유하고 더 존재하려는 노력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