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썰푼다

19년 3월의 목공일기 - 가구공장

덜소유구도자 2019. 4. 17. 01:57

안녕하세요.

로래간만이네요.

저는 그동안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가구공장에 있었습니다.

사실 누군가에게는 쥐꼬리지만 저에게는 충분한 머니였습니다.

애초에 얘기하고 들어간 조건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싸장님은 나한테 10월까지 존버하면 공장장아닌 공장장의 위치를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나가기로 했던 형이 나가야 내가 킹장장이 되는거였는데

그 형은 나가지 않기로 했고,

이 회사가 아예 인터넷 판매로 넘어가는 시스템을 갖추면서

이 회사를 다니는 메리트가 1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왜냐면 목수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일하는게 훨씬 비전있는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유토피아 건국이 목표인지라..

 

당락은 이거였죠.

안정적으로 같은 회사에서 일정하게 오를 임금을 받으며 다니느냐 vs.

불안정하고 일이 언제 끊길지 모르는 일을 다시하느냐.

 

저는 고민끝에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월세계약이 10월에 끝나면 저는 지방으로 내려갈 예정입니다.

 

1년동안 서울에서 살아오면서 느낀 점은 내가 여기서 행복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젊어서 치열한 경쟁속에 있어야하는데 저같은 초식동물은 육식이 맞지 않았습니다.

 

뭐 잠깐은 좋았습니다. 예를들면

 

입사한지 얼마 안된 나에게 취미가 같다며 건내주신 건프라를 받았을 때...

마침 얼마지나지 않아 생일이었던 나는 뼈를 묻겠다고 다짐을 했었죠. 

물론 아냐 무덤.

 

이 수많은 피스들을 담요위에 퍼부었을 때 나는 뢀부가 부르르 떨릴 정도의 극강의 쾌감을 맛봤습니다.

이렇게 많은 부품들은 내가 신경쓰고 조립해야할 부분이 늘어난다는 말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조립기간도 길어지면 자연히 제품의 퀄리티 또한 떡상한다는 기대감이었습니다.

조립 기간이 길어지면 조립하면서 나는 계속 행복할거니까요..

중간정도 완성했을 때의 모습.

 

완성했을 때의 모습

이 건프라를 제작한 나의 토요일 일요일은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해피해피 해서 세상만물이 꽃으로 보였습니다.

비록 꽃은 피기 전이었지만요.

 

 

 

가구 공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

인테리어 현장직원이 꽤 많이 왔다갔다 했었는데

현장뛰다가 왔다니까 사람들 표정이 " 끵???" 이런 표정이었습니다.

한 세네분 정도가 물어봐서 같이 5~10분 정도 얘기해봤는데 전부다.. "씨발 왜?"

이런표정이었어요. 

이 대단히 돈도 안되는 걸 왜하냐. 라는 표정이었고..

공장 부장은 한번은 내게 와서 이런말을 했습니다.

 

"가구 공장을 잘 다니려면 말이다.. 자고로 부장말을 잘들어야한다 이말이야"

하면서 꼰머질을 하셨는데 그 내용은

" 적당히 다니다가 기술습득해서 독립해라. 여기선 최고 많이 받아봐야 월 500이다. "

 

나는 생각했습니다.

' 월 500이면 시발 바랄게 없는데 뭔 Gey소리야.. '

 

근데 이런거저런거 각을 다 재봐도.. 지금 생각해봐도 여긴 개꿀직장인게 분명했습니다.

일이 빡세지도 않아. 터치하는 사람도 없어. 진짜 내인생최고의 개꿀직장.

한가지 단점은 출퇴근 빡센거.. 근데 그건 단점도 아닐정도로 장점으로 중무장한 공장이었음.

 

 

며칠 지나고 나서 자작나무 합판으로 뭘한다고 존나게 샌딩질을 시켰습니다.

내가 이 공장에서 맨처음에 조립을 해야한다고 하더니

며칠간은 개잡부마냥 부려먹더니 쪼끔 미안했는지 엣지기를 존나게 바르게 시키고,

조금 지나서는 샌딩질을 존나게 시켜줬어요.

물론 중간중간 개잡부일을 여전히 시키긴 했습니다만.. 큰 불만은 없었어요.

원래 이럴거 알고 들어왔으니까요.

뭐 이런식으로 CNC로 구녕뚤버놓으면 거기다가 그냥 침봉이나 졸라게 박아대는 뭐 그런 잡일??

조금 지나니까 아예 말을 바꿔서

포장하고 엣지바르는 위주로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럴거면 애초에 기술자 단가 얘기는 왜 했는지 ㅋㅋㅋ

 

 

저 사이사이 마다 샌딩질 존나게 해줬습니다.

나는 내가 사포가 된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갈다가 손에 나무가시 박혁거세.. 스바

칼로 째서 잘 빼냈습니다.

 

엣지기 작동 화면

엣지기 운전화면인데 싱크대 가구에 들어가는 모서리에 엣지라는 것을 밴딩기계로 붙여주는 기계에요.

보통 여러분들 집에 있는 그 싱크대장이나 책상같은거 생각하시면 돼요.

이게 목수 처음했을 때 다 해봤던거고 다 알던거라 적응하는데 어렵지 않았어요.

 

트랙모터가 이제 트랙 돌아가게 하는거고

본드모터는 본드발라주는 통 돌려주는거고

점핑은 뭐 엣지면 절삭해주는거고 

히터는 추우니까 본드굳지 말라고 켜주는거고

앤드컷팅은 엣지 바르고 나서 끝에 날리는거고

뭐 기타등등 여러가지 다 알던거고 이름보면 직관적으로 느껴지는거라 어렵지 않습니다.

 

하도 바르다보면 뭐 켜야되는지 외워서 누르고

엣지밴딩기에 합판이 저절로 들어갑니다.

내가 생각도 안했는데 이미 들어가고 있어요. 그런 경지에 이르를 수 있는 일이에요.

밴딩기 발라본 사람들 ㅇㅈ? ㅇㅇㅈ.

 

엣지 바르다보면 뭐 그냥 발이안보이게 뛰어다녀야 한다 그러는데

저는 슬슬 걸어다니면서 해도 다 카바칠 수 있었습니다.

그냥 그 박자가 있어요.. 큰거는 5개 작은건 7개 정도 넣으면 이제 나오겠다.

뭐 바닥에 떨어지겠다. 이르다. 늦었다. 이런거 감은 다 알아서 익혀지기 때문에

어렵지가 않습니다.

 

싱크대 공장에서 사람들어오면 바로 시키는게 이거에요.

손가락 낑기는 것만 조심하고 엣지 잘발렸나 확인하고 청소계속 해줘야하고 신경제일 많이 써야하는게

이거고 또 그만큼 귀찮고 번거로운것도 이거라서 초보들 많이 시켜요. 쉽기도 하고..

 

 

어느정도 공장 돌아가는 시스템알고 좀 잘하는 것 같으니까 조립도 슬슬 시켜주더라고요.

같이 다니는 형이 왜이렇게 빠르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포장도 존나게 잘했습니다.

 

일하다가 들어온지 얼마안된 꼰머아저씨가 개지라를 하길래

맞짱뜰 뻔하다가 "아오!!' 하고 사무실에 박혀있다가 뭐 사장님이랑 이래저래 얘기해서

사장님이 꼰머아저씨 데리고 나갔다가 왔습니다.

그 사이의 반나절만에 포장을 다 해놓으니까

사장님이 야밤에 물마시러 나왔다가 돈벌레 구경이라도 한마냥 퐈들짝 놀라시더랍니다.

 

네.. 일잘한다고 자랑좀 해봤습니다. 재수없었다면 죄송합니다.

뭘 시켜도 잘하고 그래요 제가... 

죄송합니다.. 사람이 겸손할 줄도 알고 그래야되는데..

 

조립하는것도 형이 한번보여주고 내가 곧잘 따라하니까

갑자기 이것저것 엄청 시켜서 저날은 고생 좀 했습니다.

 

여기 공장이 존나 웃긴게 업무의 바리에이션이 넓어서 다기능공이 되고 있었습니다.

정신차리고 보면 페인트 바르고있고,

정신차리고 보면 청소부하고있고,

정신차리고 보면 전기 콘센트 잡고 저러고 있고..

원래 공장이란 그런것이에요.

염가에 사람부리는 곳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하는 겁니다.

 

저도 처음에는 재밌어서 하다가

나중에는 또 반쯤 눈감겨서 슬슬하게되는 매직을 경험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할 땐 졸라 바빠서 눈코뜰새도 없이 하는걸 선호합니다.

시간이 잘가거든요.

 

그만큼 돈도 더 챙겨주면 더 좋고요.

 

나는 진짜 처음에는 꼰머 트러블메이커랑 싸우다가

왜 조립안시켜줘!! 이랬는데

막상 조립시켜주니까.. 아 그냥 꼰머아저씨랑 포장이나 하고 엣지나 바르고 싶다 이생각을 했습니다.

 

똑같은거 계속 기계적으로 하는건 진짜 졸려요. 시간가는 줄 존나 잘알고 일해야되는게 지ㅋ옥ㅋ

 

음 지금쯤이면 10시정도 되어있겠지 30분정도 더하고 커피를 마시는거야. 지금쯤 시계를 확인해볼까?

오 오오오 안돼.. 지금 보면 시간이 엄청 안갈거야. 그래도 궁금한데 한번 봐볼까? 하면 8시반 ㅇㅈㄹ.

 

타카 조립은 할줄 아니까 이런거는 또 곧잘 시켜줬습니다.

자작합판으로 재단해서 본드칠해가지고 뚝딱 ㅇㅈ?

그런데 문제는 도면을 그려줬는데 각도는 나 알아서 잡으라고 해가지고.. 난감했습니다.

서랍은 피스조립했고 나머지는 그냥 타카로 슥슥..

 

.응 이날은 토요일이었는데 나보고 페인트칠을 하라고 했습니다.

보통 저정도 규모면... 후끼를.. 훅훅하고 뿌리거나 할텐데

또 이날 꼰머 트러블 메이커 아저씨가 초배질하고 바로 더 해도 된다고 떡안진다고 안심하라 그러길래

한번 바르고 바로 칠했더니 떡져서 망했습니다. 

 

내가 페인트 안발라봤다고 누누히 경고했는데 ㅠㅠ

부랴부랴 30년 노가다하신 우리 털보형님한테 전화해서 물어보고

신나로 연신 닦아내고 말렸다가 재도장하고 했지만 Fail.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요?

 

결국 페인트 아저씨가 와서 다시 도장을 했죠. (..?)

 

사실 꼰머아저씨가 없었으면 저런일은 없었을텐데 초배하고 바로 발라도 된다고

자기말이 존나 맞다고 하는 바람에 저 사단이 났습니다.

결국엔 뒷처리 안하고 나몰라라 도망가셨습니다.

 

꼰머아저씨에 대해서는 공장식구 전부가 인정하는 개샹도라이였고 할말도 많은데

해봐야 씅질나니까 안하고.. 뭐 결국엔 2주뒤에 나랑 개싸우고 나갔습니다.

어차피 나갈거면 왜 지랄한거니....?

 

지랄을 했으면 이유라도 알려주던가... 

나한테 연신 해도해도 너무하네!! 라고만 오토매크로 하셨는데..

사과도 없고.. 씨발롬..

 

다른 공장으로 가신다고 하고 홀연히 사라지신 꼰머아저씨 잘먹고 잘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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