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인 생각

진득허니 하는게 없는 나에게..

덜소유구도자 2019. 4. 17. 00:34

나는 매진하던 일을 저버리고 다시 새로운걸 시도하는 것..

처음엔 그게 멋있는 선택인 줄 알았습니다.

 

나는 태생적으로 하기 싫은 일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유치원 때를 회상해보면

유치원에서 정해준 일과에 따라가기 싫어서 유치원에 출근을 하지만

곰돌이책, 핸델과그레텔책.. 동화책을 두세권 정도 읽습니다.

그러면 오늘 유치원에서 내가 정해둔 일과는 끝이라고 단념하고 퇴근했습니다.

퇴근길에 나서면 유치원 원장님이 항상 버선발로 쫓아오시곤 했습니다.

나는 그게 그렇게 재밌어서 깔깔거리고 더 신나게 도망치더랍니다.

너무 빨리 도망가면 날 놓쳐서 안쫓아올거니까 일부러 느리게 뛰다가 거의 쫓아왔다 싶으면 또 달아나고..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마을 방범대라고 선생님이 왜 호다닥 쫓아오는지,

나는 유치원에 왜 와서 무엇을 해야하고 얻어야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유치원에는 큰 미끄럼틀이 있었는데요.

이쁜 핑크빛이 도는 귀엽고, 어린이라면 구미가 상당히 당기는 플레이공간이 있었어요.

조그만 집을 공중에 메달아 놓고 집 칸칸이 징검다리로 연결해 놓은 혁신적인 놀이공간이었는데

유치원 동급생들은 모두 거기서 놀고있었고, 그 친구들을 부럽게 생각하다가도

이내 그 생각을 스스로 단념해버렸습니다.

나도 저 친구들과 놀고싶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에너지 소모가 많고 또 놀자고 했을 때

거절 당하면 어떨까 하는 두려움이 어려서부터 있었던 것 이었지요.

 

나는 5살이 될 무렵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성탄절 무렵 나에게 무엇이 갖고 싶었냐고 물었고, 나는 마음속에는 '로보트'라고 생각했지만

입밖으로는 '스케치북'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래 우리 아들은 그림그리는 걸 좋아하지? 스케치북 몇장갖고 싶니? 세장..?'

하고는 여쭤보셨고

나는 그 쯤이면 되겠다고 대답했죠.

이윽고 다가온 성탄절에 하얀수염분장을하고 빨간 모자를 눌러쓴 짭타할아버지를 보며,

그가 내 이름을 호명하고 내게 선물을 줬을 때, 나는 그 짧은 순간에 그 선물이 흔들리는 텐션으로

단번에 스케치북 세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 산타할아버지와 스케치북은 어머니와 유치원 사이에서 벌어진 중상모략이라는 걸

킹리적 갓심으로 추론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조용하고 소극적이지만 음흉하고 논리적인 아이가 되어 자랐습니다.

 

교회에 가면 공짜로 밥을 먹여주고 나의 귀여움이 먹힌다는 사실을 알고

주말이되면 교회에서 찬송가를 불렀고

맞벌이하시는 어머니는 일요일도 없이 일을 하시기에

나는 스스로 음식을 찾아 나서서 그것을 먹어내고야 말았습니다.

부활절이 되면 동네방네에서 삶은 계란을 이쁘게 포장해서 주는 것을 알고

이동네 저동네 옆동네 옆옆동네 까지 가서 부활절 계란을 수거해서 먹었습니다.

 

땅에 떨어진 초콜렛이 맛있어 보여서 아무도 안볼 때 슬쩍 주워서 수돗가에가서 씻어 먹기도 했습니다.

나는 어리지만 우리집이 가난한 걸 알고있었습니다.

내가 어머니에게 천원한장 달라고 하는게 어머니에게는 큰 부담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나는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내가 초콜렛이 먹고 싶어도 그것은 입밖으로 내서는 안되는 말이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집이 잘살아서 자기 간식을 사면서 옆친구 간식까지 사주는 친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래서 그 친구랑 놀면 간식을 사준다는 것을 알고 잘 붙어다니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맛있는 차카니를 공짜로 쾌척한다고 한 들 나와 성향이 맞지 않는 친구랑은

그렇게 가깝게 지내지는 못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어머니가 아파죽어도 학교에는 가라고해서

장염에 걸려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학교에 가서 새하얗게 질려서 앉아있었습니다.

손들고 선생님 저 똥이 마려워서 화장실 다녀올게요 말한마디를 못해서 하얀얼굴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짝꿍이 나는 말이없고 투명인간 같아서 좋다고 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국물 마시는 소리도 안들릴정도로 조용하다고 했습니다.

나는 실제로 학교가서 집에올 때 까지 말을 한마디도 안하고 온적이 많았습니다.

 

중학교 때 나는 이런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습니다.

나는 친구들과 놀고싶지만 나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어서

그 내향적인 성향이 너무 대단해서 아무말도 안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아무것도 아닌것 처럼 살았던게

싫어서 나를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중학교를 아주 멀리가서 이전까지의 내가아닌 새로운 나로 살아보고싶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를 아주 멀리 갔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30분정도 가야하는 먼 곳으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같은 초등학교 출신 학우가 세명정도 있었고

나머지는 나를 본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거기서 활발한 성격의 아이이고 싶었지만

낯선 환경은 나를 더 작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한달이 지나도록 반에 친구도 없이 조용히 지냈습니다.

나는 점점더 작아져 가는 나를 봤습니다.

이건 내가 생각한 활발하고 유쾌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한달이지난 국어시간에 발표시간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말을 못하지만 글로는 잘 쓸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위트를 녹여내서 시뻘개진 얼굴로 숨도잘 못쉴정도로 긴장한채로

내가 밤새적은 글을 읽었습니다.

 

그후로 친구들은 나를 알아봤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관심을 가지고 나를 재밌는 사람으로 인식했습니다.

나의 이름을 물어봐주고, 나에게 또 어떤 재밌는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나는 그게 너무 두려웠습니다.

누군가의 관심이 그렇게 크고 갑작스럽게 느껴진다는게 어려웠습니다.

나는 에라모르겠다 하고 더 과장된 행동을 했습니다.

더 재미있는 행동을 하고 돌발적인 말을 하고 위트를 녹여내었습니다.

친구들은 나를 사랑했습니다.

무서운 일진 친구가 나를 아껴주고,

한따까리 하는 친구들이 나를 이반 저반 데려다니면서 개인기를 늘어놓게 했습니다.

나는 성대모사를 잘하고, 기억력이 좋아서 재미있는 떡밥이 있으면

줄줄 외워두었다가 스위치를 누르면 바로바로 꺼내서 줄줄 연기했습니다.

 

그렇게 순회공연을 돌고오면 모두가 날 알아보고 날 좋아해줬습니다.

킹치만... 그건 너무 힘들었습니다.

활발하고 쾌활한척 하면서 하루가 끝나고 집에오면 녹초가 되어 쓰러져 잠을 잤습니다.

 

로우에너지인 내가 하이에너지인 척 하는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 인기와 그 사랑과 관심을 받기위해서 나는 매일매일 내가 아닌 나를 연기하며 살았습니다.

나는 질나쁜 친구들과 어울려서 못된 짓도 많이하고 다녔습니다.

동네에서 소문난 개구쟁이새끼였습니다.

타고난 장난끼로 그일대를 쑥대밭을 만들어 놓고 집에들어오면

버디버디로 친구들이 열심히 빨아줬습니다.

나는 그때 인생에 절정의 인기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직장문제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나는 다시 예전의 나이고 싶었습니다.

진짜 나로 살고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입을 닫았습니다.

 

전학생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몰려온 아이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책상머리에 푹 엎어져서 팔로 얼굴을 감싸고 자는 척을 했습니다.

나는 조용히 살고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또 외로운 심상에 젖었습니다.

 

나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친구를 조금 사귈 수 있었고,

조금의 친구들과 각별한 사이로 지낼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나는 끊임없이 하이에너지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지만 인간이 지니고 있는 타고난 기질을 바꿔내기는 쉽지가 않았습니다.

 

이런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좋아해주는 친구들은 나를 

타고난 나인 사람 그자체로 받아들여주고

나의 진지한 모습과 장난끼 가득찬 모습들에 의외성을 느껴서 진심으로 더 좋아해줬습니다.

나는 진정한 나인체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참 고마운 몇 안되는 친구들과 지금도 연락을 하며 막역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는 스스로 왕따가 된적도 있고,

누군가에게 그 모습을 투영해서 질타해보기도 했고,

동네에서 소문난 인기쟁이가 된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나로써 살아가는 것 보다

맛있는 인생은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하고 내가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을 가져냈을 때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고 또 쉽게 포기할 수도 없지만

내가 달성한 목표가 나를 배신할 수도 있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석연치않은 결말을 줄 때도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노력은 배신하지 않을 수도 배신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따라하고 연기하고 사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내가 나인 모습을 보여주고 살아갔을 때

나에게 상처를 주지않고 그 모난 모습까지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많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사랑을 갈구하지 않아도 그저 내가 가면없이 온전히 나로서 살아갈 수 있을 때

그 길은 더 외로울 수 있지만, 그 모난 모습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갈 때 진정한 행복이 꽃이 핍니다.

 

이게 내가 진득허니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내가 하기싫은 무언가, 내가 아니게 하는 무언가, 나를 힘들게 하는 무언가.

그것들로 부터 완전히 해방된 삶을 살 수 있다면,

내가 온전히 나인채 살아갈 수 있다면

그 행복감은 온전히 내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버렸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과 사회와 편견들이 나를 나인채로 살아갈 수 없게 한다는 명제하에

두가지 삶을 선택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것에 만족하고 사는 삶이 있고,

하나는 나처럼 끊임없이 찾아나서고 그것을 내입맛에 맞게 두르고 살아가보는 것입니다.

 

나는 수십가지의 알바를 한달도 못채우고 관둬본적이 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은 재미도 없고 의미도 못찾겠고 하기 싫더라고요..

 

나는 

누가 나에게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들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증명했지만,

그들은 '대단하네' 하고는 의연히 자기 할 일을 하러 돌아갔습니다.

인생은 그렇게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온전히 나로 살아갈 수 있다면 

또 그렇게 살아도 생활이 풍족하다면

그런 나와 사랑을 나누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이 우주 어디에 있어도 그곳은 유토피아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유토피아는 없다고 입을 모아 얘기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그 유토피아를 찾아서 내가 연기하던 수 많은 직업들 중에 하나를 저버리겠습니다.

 

혹자는 내게 왜이렇게 진득허니 하는게 없냐고 질타하지만

나는 한번뿐인 내 인생에서 오롯이 내가 주연이 되어 이 길을 걸어내고 있는 것 입니다.

온전히 내가 주인공인 삶을 살아내고 눈을 감기위해서.

 

사람들한테 좋게 보여지기 위함이 아니라,

계속 포기하고 계속 새로운걸 시도하는 내가

내 직업을 내 이름 세글자로 설명하는 내가..

더 좋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