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에서 무소유의 의미와 실현 가능성
생각

요즘 지인들에게 무소유 마인드를 강력하게 설파하면서

때때로 술한잔 걸치며 언성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오늘은 인문학적 성찰과 철학적 감상이 풍부한 이야기를 할 것 이지만,

단지 뜬구름 잡는 이념뿐만이 아닌 실현 가능한 솔루션까지 제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INTP들은 환장할 만한 소재죠?

2021.07.06 - [생각] - 사실 MBTI가 큰 의미는 없습니다.

"네.."

 

 

무소유 마인드와 저의 작은 쉘터(사회초년생, 소아를 위한 주거지;대피소)를 마련하는 계획을 이야기 해주면

지지자와 지랄자로 나뉩니다.

 

지지자는 "음 너의 마인드 아주 칭찬해" 하며 열렬히 지지하지만 그렇다고 따라올 생각은 없어보이고

지랄자는 "디스 이즈 자본주의다 리벌럼아" 하며 배척하는 모습으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무소유" 라는게 우리 사회에서 무색해지는 마인드가 되어버렸다는 반증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정말 자본주의에서 무소유는 의미없는 말일까요? 더 나아가 불가능한 사상일까요?

 

자본주의 안에서 무소유의 의미를 들여다보자

 

무소유의 궁극적인 목적은 "나 자신이 나 자신으로 온전하게 행복해지는 것" 입니다.

행복을 추구하며 항해하던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이 정박할 목적지. 즉, 플라톤의 이데아 같은 것 입니다.

이데아는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지만 나 자신의 세계에서는 충분히 실현 가능하죠.

그렇지만 단순히 나 자신의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 의미는 아닐 겁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추구하거나 쫓아가거나 따르려면 일정한 규율이 필요하고 그것이 누군가에겐 종교가 될 수 있고, 확고한 신념, 의지, 롤모델 등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건 멋있어서 흉내내는 모방이 아닌 나라는 사람의 내면에서 끄집어내는 참된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어봐야 결국엔 자기파괴적인 괴리감이 커질 뿐이라는 것을 살면서 배웠기 때문에 이것은 제가 주장하는 참된 진리중에 하나입니다.

 

주제에 대한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자본주의에서 무소유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무소유의 참된 발현은 다수에겐 적합하지 않습니다.

사찰, 수도원, 수사원, 수녀원, 사회복지센터에서 무소유에 근사한 실현이 이루어집니다.

이 마저도 완전한 무소유에 도달할 수는 없죠.

외부에서 기초적인 후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무소유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제 생각엔 속세를 뒤로하고 출가한 자연인 또는 종교적인 의미로 그 길을 찾아 떠난 사람 외에는 없다고 봅니다.

왜냐면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살고 있잖아요.

 

인간은 먹을 식량과 입을 옷과 안전한 주거가 필요합니다.

갓난 아기는 인간이 원초적인 삶으로 돌아갔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시사해줍니다.

 

아기는 울고, 부모는 보살펴 줍니다.

젖이나 분유를 물려 배를 채워주고, 춥거나 덥지 않게 옷을 입혀주며 온도를 조절해주고, 누워 잘 수 있는 집과 요람을 제공해주어야 합니다. 똥을 싸면 똥기저귀를 갈아줘야하고요.

 

그는 기본적인 욕구밖에 없으나 욕구의 충족은 부모가 도와줍니다.

 

우리는 부모가 필요하고 이것은 앞서말한 개인의 신념, 종교, 롤모델, 진짜 부모님 등이 있습니다.

그 가치에 돌봄을 받거나 따르고, 의식주에 필요한 것들을 모아댑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단지 숨을 붙이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 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 자신이 나 자신으로 온전하게 행복해지는 것"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공유하고 베풀어 누군가를 구원하고 더 사랑받고 더 사랑하고 행복해지는 것"

에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필요충분조건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닿을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인간"으로 행복하려면 우리는 필시 나라는 독립된 주체의 개념을 확장시켜 너와 나, 인간관계, "사회"를 포괄해야합니다.

나는 나고 너는 너가 아니라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에 속하듯이 이것은 내가 어쩔수 없이 필멸자로 태어나 사회에 귀속되어진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하여 사회로 확장시켜 도착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그러니까 레벨1은 "내가 짱이야" 이고 레벨100은 "이 세상에 모든 것을 사랑하라" 입니다.

레벨1의 좆밥은 때때로 눈살 찌푸려지는 셀피쉬한 인간의 모습 또는 자애심이 충만한 행복한 인간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이런 인생은 보통 존나게 외롭지만 자본주의에서는 뛰어난 와꾸가 덧붙여져 연예인의 모습이 되기도 하죠.

그러나 그는 좆밥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회로의 확장이 없다면요.

 

자신을 사랑하는 개념을 확장시켜서 타인 1명을 사랑하는 것이 레벨10이라고 봅니다.

그것이 짝사랑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은 레벨 10까지는 도달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인간의 레벨은 너와 나 내새끼 나의가족 너의가족 우리가족 쭉쭉 뻗어나가 사회까지 닿아줘야합니다.

이게 무소유로 완성된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그러한 모습은 굉장히 어렵고 또 생애주기내에 이루기 어렵기도한 문제이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우리가족" 까지만이라도 가보자고요.

 

나라는 사람이 사랑할 수 있는 범주가 "나 자신" 부터 "우리 가족" 사이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본주의 안에서 행복해지려면 무소유 마인드의 유무가 삶의 질에 굉장한 관여를 하는 요소가 됩니다.

 

자본주의라면 어차피 제한된 물질을 몇십억 인간들이 나눠써야하는 사회입니다.

인간의 뇌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한한 정보와 세계들을 공유하는 이 세상에서 지구는 한정된 물질만 제공해줍니다.

먼 미래에는 뭐 다른 행성에서 물질을 조달해 오거나 아예 이주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쨋든 무한한 자본과 유한한 자본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무한한 자본은 어차피 무한해서 다 써버려도 어차피 계속 재생산됩니다.

대표적인 업계는 IT정보산업이 있겠습니다.

이 무한한 자본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 입니다. 

유한한 자본은 언젠간 소멸되고 그 가치가 무한한 자본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는 것을 인간성의 본능으로 알고있고, 수 세기 동안 검증되어왔고, 이미 굉장히 많이 증명되어진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지구라는 세상이 '스타크래프트' 라고 생각해봅시다.

미네랄과 가스와 주어진 맵의 크기는 한정적입니다.

그러나 전략은 무한하죠. 그래서 무한한 자본이 더 가치있고 중요한겁니다.

 

더군다나 자본주의에서 유한자본이 아닌 '무한자본을 생산하고 판매한다'는 건 '매입비용 없이 매출을 낸다' 라는 말과 상통하거든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산업'이 필멸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자본주의안에서는 이런 '개꿀산업'이 또 없는 것 입니다.

그러면 미디어에서는 당연히 개꿀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계속 유한한 자본을 흡수하려고 노력하겠죠.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는 여기까지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필요하다면 이전글을 읽어주세요.

 

우리집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습니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망하거나 자연재해로 집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고요.

3차 세계 대전으로 핵전쟁이 발발하여 내집이 증발할 수 있다면 이것은 무한한 자본이 아닌 것처럼

이런 유한한 것에 얽메이기 시작하면 삶이 추해지고 피곤해지는 겁니다.

그러면 행복해질 수가 없죠.

 

자본주의가 무한한 것에 더 비중을 두는 것 처럼

나라는 개념도 무한한 것에 더 가치를 둬서 유한한 것들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야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사회주의 사회가 되어도 '사회'라는 것은 영원한 것 처럼 대입해볼 수 있습니다.

집이나 돈 이런건 영원하지 않잖아요. 인간의 삶, 나의 이름, 나의 자산 이런건 영원하지 않아요.

어차피 영원하지 않을 거라면 더 영원하지 않을 것에 피곤하게 메달려 있어봐야 삶을 영위하는데 스스로 족쇄를 여러 개 채워두는 의미밖에 찾을 수 없는 것 입니다.

무소유는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 입니다.

이게 진리가 아니면 무엇이 진리이겠습니까.

 

물론 진정한 무소유는 절대적 다수에게 불가능한 개념입니다.

저 또한 알고있고 그렇게 행할 수는 없습니다.

허나,

 

자본주의에서 절대적 다수에게 대입 가능한 무소유의 가치가 있느냐 라고 한다면 저는 무조건 있다고 얘기할 것 입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덜소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가 필요한 만큼만 소량으로 소유할 수 있잖아요.

그 만큼에 만족할 수 있잖아요.

눈높이를 높일 수 있다면 응당 낮출 수도 있습니다.

꼭 위를 보고 올라가야만 성장이 아닙니다.

아래를 보고 내려갈 줄 알아야 참된 성장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남들이랑 비교하면서 섀도우 복싱하지말고 어제의 나 자신보다 손톱만큼이라도 더 발전한 미래의 나를 향해가다보면 어느새 엄청나게 커버린 나 자신과 뒤에 뿌려놓은 수많은 거름들로 신경쓰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사랑받게 됩니다.

처음부터 난놈이 어디있나요.

우리는 성장형 캐릭터를 사랑하잖아요.

 

돈은 돈대로 계속 모으세요. 아무 상관 없습니다.

모으기 싫고 쓰고 싶다고요? 그것도 괜찮습니다.

다만 그것을 본인의 소유라고 착각하지마세요.

유한한 가치에서 최소한의 수준에 충분히 만족하고 눈을 계속 낮추세요.

그렇게 모아둔 유한 자산은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더 무한한 가치를 위해 사용하세요.

사랑을 위해 쓰는게 베스트 솔루션입니다.

나누고 베풀고 공유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 만큼 가성비 좋은 소비가 없습니다.

 

 

무소유라는 개념은 아이의 부모같은 존재이고 그런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의 목적지로 도달하는 결론이고 그 여정에서 중간에 이탈할지라도

당신이 항해하는 과정에서 이미 많은 것들이 당신의 사랑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낼 것 입니다.

 

유한한 물질을 증식하느라 지구를 괴롭히고, 환경을 파괴하고, 타인을 파괴하고, 나 자신을 파괴하기 보다는

무한한 개념으로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타인에게 베풀고, 그만큼 사랑받으며 환경도 지키고, 지구도 행복하게 만들어주세요.

작은 나비효과의 날개짓은 올바른 방법인 무소유라는 개념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게 윈윈이고 에코성장 아닙니까? 에? 내말이틀려?

 

 

1줄요약: 자본주의 마인드로 보나 뭐로보나 무소유는 어차피 윈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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